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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r 27. 2022

나의 사랑하는 생활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2012. 3.19)

정확하게 중학교 1학년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국어 교과서에서 피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고 나서, 난 피천득 마니아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50% 이상이 기억하고 있을 '인연'이 아니라, 나는 누가 뭐래도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최고로 꼽는다.

 

그 짧고 간결한 글 속에는 인간 '피천득'이 온전히 들어 있고, 심지어는 아름답기까지 하니까. 조금만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라면 너도나도 써 대는 에세이나 산문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마지막 글귀를 옮겨본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몇 년 전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하관식에서 꽃을 뿌리던 따님의 기사를 읽고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그분의 삶이 지극히 평탄했기에 그런 품성과 글이 나온다고 말한다면, 그런 품성을 지녔기에 그런 삶과 글이 나왔다고 고쳐주겠다.

 

운명론인지는 모르지만, 타고난 품성이 삶의 궤적과 굴곡을 좌우하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험난하다면, 품성을 돌아봄이 어떠할까?




10년이 흐른 오늘의 나는,

"고운 얼굴을 곱지 않게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어 보이게 헐뜯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길 바라지만, 몇몇 사람을 끔찍이 미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점잖게 늙어가고 싶어 한다."


10년 전의 일기가 부끄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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