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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Nov 15. 2021

풍경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2012.10.19)

가끔은 이유도 분명치 않은 일로 밤을 새우고, 때때로 편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종종 곱지 않은 말을 듣고, 흔하게 아름답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되는 것이 현대인이라는 명패를 달고 사는 이들의 뻔한 삶이다. 그들이 비록 짜릿한 주말과 유쾌한 여가를 누린다고 하여도 현실의 찌든 삶은 보상되지도 치유되지도 않는다. 우린 늘 마음의 그늘을 안고 있지만 되도록 그것을 잊으려 노력하며 산다.

 

삶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까지 버티는 주된 이유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하고 이틀의 주말과 15일의 연차와 함께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당신의 담대한 용기를 여지없이 꺾어버린 채 그 달콤한 편승을 지지하는 세상의 대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평범한 삶을 비난할 마음도 없지만 그 근거 없는 대세에 은근슬쩍 숟가락 얹을 마음 또한 없다. 다만, 현대인의 삶을 지탱하는 마약 같은 자극과 쾌락은 언제나 유효기간을 전제로 하기에 늘 조심하고 아끼지 않으면 당신의 삶을 온전히 보전하기 어렵다는 경고쯤은 던지고 싶다.

 

도대체가 왜 며칠 밤을 새웠는지 불분명하지만 기억조차 몽롱한 과로의 날들을 보내고 오랜만에 일찍 퇴근하여 곯아떨어졌던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찌뿌둥하고 편치 않은 컨디션으로 부은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 비친 풍경 하나가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침대 옆 바닥에서 일곱 살 아들놈은 무릎을 꿇고 제 엄마 귀에 쏙닥쏙닥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고, 아내는 재밌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그 간지러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귓속말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아이들의 귓속말을 들을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긴 하지만 잔뜩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내 표정이 상상되어 또 웃곤 한다.

 

그날 아침, 아이가 아내에게 해준 말은 대략 이렇다. 늘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침이 괴로운 아이는 있는 투정 없는 투정을 부리기 일쑤지만 그날만큼은 달콤한 꿈자리 덕에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일어난 것이다. 꿈속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나왔고 그 공주님이랑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눈썹 휘날리게 바쁜 아침에 아내의 귀를 잡고 속삭이고 있었고, 아내는 바쁜 일상을 잊은 채 행복하게 듣고 있었다.

 

촌각을 다투며 사는 현대인의 삶에 유일하게 정지된 영상을 제공하고 나른한 기운을 안겨주는 건 역시 아이와 가족이란 울타리뿐이 아닐까... 왜 아이들은 귓속말을 할 때 한 손으로는 엄마의 귓불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마디라도 옆으로 새어 나갈까 봐 입 주위를 가리며 말하는지 아는가? 당신의 아이는 지금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고, 단 30초간의 정지된 휴식이 당신이 못 견뎌하는 삶을 이제껏 견디게 해 준 것이다. 간지러운 목소리와 조물거리는 손아귀에 취해서 말이다. 이것도 유효기간이 있긴 매한가지지만. 아이들이 사춘기를 넘어 훌쩍 성인이 되었을 때 당신의 삶은 무엇으로 지탱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떻게 지금껏 버텨왔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일곱 살 그 아이가지금 고등학생인데 몸만 집채만큼 커졌을 뿐(정말이다) 하는 짓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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