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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Feb 14. 2022

soft landing

내려야 할 때를 안다는 것(2013. 4.23)

모든 지상을 떠난 비행기는 정해진 항로를 비행하고 나면 목적지 공항에 내려앉아야 한다. 공중에 떠 있는 항공기가 제아무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평형을 유지하고 유연하게 활공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동체가 허공을 날고 있는 상황은 결코 안정적인 상태라 말할 수 없다. 물론 지상 몇만 피트 상공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에도 날개가 짧은 전투기가 아닌 이상 바로 추락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그래서 비행상황은 늘 비상상태인 것이다. 땅을 박차고 멋들어지게 창공을 가르는 것을 '비상(飛上)'이라 부르는 이유가 어원은 다르지만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모든 이륙은 착륙하는 순간까지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얘기다. 급격한 경기 호황이 연착륙으로 종결되지 않는 한 재앙이 되듯이, 비행이든 경기 호황이든 모든 고공행진은 착륙하는 순간까지 항상 긴장과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지만, 그 추락에는 무엇보다 충격적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종말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도 장을 담듯이, 추락이 두려워 이륙을 거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하물며 이륙한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을 생각해 보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한번 땅을 박차고 허공에 날아 오른 새는 에너지가 남아 있는 한 좀 더 높이 오르려 한다. 일단 안정적이라는 지상을 벗어난 이상 거칠 것 없이 높은 곳으로 오르지 않으면 불안정하긴 매한가지일 뿐 아니라, 낮게 나는 새가 장애물이나 사냥꾼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하여 우리는 이륙을 하면 있는 힘껏 날아오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높게 날아 오른 새가 유리한 것은 바람을 타기 때문이다. 날개를 있는 대로 펴고 바람을 타면서 활공을 하면 에너지를 전혀 소모하지 않고도 멀리 이동할 수 있다. 높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시야의 격차를 가져오고 그 높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땅 위에서 아등바등 달리는 것과는 차원과 단위가 달라져 버린다. 그래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당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무작정 뛰기보다는 날아오를 방법을 궁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할 때를 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면 내려가는 것보다 잠자리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찍 정상을 찍은 사람들은 서둘러 내려오는 게 답이다. 손뼉 칠 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도 하산할 줄 모르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등산객에게는 다양한 징표들이 알람을 주기에 어지간히 어리석지 않고는 하산할 때를 짐작할 수 있다. 정작 문제는 하늘을 날고 있는 이들이다. 비행기는 계기판이 남은 연료와 갈 수 있는 거리를 알려주고 애초에 정해진 항로와 목적지가 정해져 있기에 여력이 남았다고 하여 LA행 비행기가 뉴욕까지 가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유비행가들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한번 창공의 맛을 보면 쉽게 내려오지 못한다. 고지가 저 앞인데 연료가 좀 부족하다고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더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부드럽게 착륙하느냐 라는 사실을 비행 중에는 종종 잊는다. 창공을 가르고 날아올 수 있을까 했던 이륙할 때의 조바심은 온데간데없고 드 넓은 평야나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당신은 이미 거칠 것 없는 하늘에 푸~욱 빠져버린 것이다. 사실 그 황홀한 순간에 착륙을 염려하는 사람이 더 유별나긴 하다.

 

하산하다가 길을 잃어도 살아남는다. 운 좋으면 산골 초가집을 발견하기도 하고 든든하게 준비만 해가면 노숙으로 하룻밤은 버티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모든 비행은 착륙과 추락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추락이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보전하여 줄지 모르지만, 그 치명적인 손상은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할 때가 많다. 당신이 꽤 높은 곳을 비행하고 있다면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지어다. 착륙할 것인지 추락할 것인지만 말이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경착륙 할 것인지 연착륙할 것인지.

 

폼나게 내려오고 싶다면 지금 뿐이다. 비행에서 연착륙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한번 놓치면 더 이상 아스팔트 활주로에 내릴 기회는 없다. 아니 방법이 있긴 하다. 긴급탈출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 주지할 것은, 긴급탈출은 오직 혈혈단신이라는 사실. 비행기도 적재한 화물도 혹은 동석자도 구할 수 없고 당신이 건질 수 있는 것은 그저 늙고 병든 당신의 몸뚱이뿐이다. 이젠 날아오를 기력조차 없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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