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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Feb 08. 2022

가, 족같은

우리가 남일까?(2016. 2.22)

개그 프로그램이, 코미디 상황극이 우리에게 웃음만을 주진 않는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는 탓이다. 유쾌한 박장대소도 있지만 진한 페이소스를 전하는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도 있어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쓴웃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승되어 온 것이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우리의 마당놀이를 비롯하여 고춘자, 장소팔의 입담 좋은 만담, 서양의 원맨 스탠딩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코미디 종합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오랜 슬럼프에 들어갔다는 비아냥을 듣지만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흔히 코미디의 품격을 시사풍자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대상을 단순히 정치로 한정할 일은 아니다. 최근(2016년 초를 기준으로) 선보인 개콘의 새 코너, '가족 같은'은 나에게 개콘의 저력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우리가 훼손하려고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절대적인 가치 중에는 '가족'이 존재한다. 그 존재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한결같은 사랑과 우애를 과시해야 할 것 같은 가족의 실제 모습이 개콘의 상황극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코너는 사실, 대한민국 명절 연휴의 특집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설정이다. 재혼한 부모의 갈등, 고개 숙인 큰아들의 소외, 당당한 며느리,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밉살스러운 시누이,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기만 한 손자, 다른 형제와의 비교, 편애를 이유로 저항하는 철부지이자 사고뭉치 막내(이복 여동생 어린 막내를 빼고)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기가 막힌 여운을 남기는 코너 제목. 잘못 발음하면 욕처럼 들리는... 이 환상적인 은유를 어찌 반기지 않을쏜가.


  시누이의 단골 대사는 '오빠, 르는   아니야', '언니, 르는  아니야'... 분명 손아래인 시동생이 언니와 오빠를 도매금으로 팔아버린다. 호칭은 존칭이나 말이 짧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시월드" 막장 판이다. 물론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을 걷어내고서도 말이다. 장남은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가 그럴수록 제가  힘들어진단 말이에요".  대사도 이미 히트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유교적, 가부장적 가치관이 만들어 놓은 장남의 자리는 이렇게 힘겹고 버겁다. 밤낮 사고만 치는 막내는 집안 행사 때마다 불쑥 나타나 가족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런 그의 현재 모습은 풍요롭다. 어설프지만 잔뜩 멋을 내고는 금발의 백인 여성을 며느리감이라고 데려온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이 코너의 화자는 사진가다. 그는 그저 집안 행사의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다.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그만인, 이 집안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다. 그런 그는 심각한 영업방해를 받으며 그 집안의 가족 소사를 속속들이 알아간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사진가의 시선은 시청자의 시선과 닿아있다. 우린 그렇게 막장가족의 행태를 재미나게 즐기고 있지만, 일을 마치지 못한 사진가와 같이 즐겁진 못하다. 각박하고, 무정하고, 잔인하며, 때로는 흉악무도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마지막의 안식처는 '가족'이라고 믿어왔던 우리에게 이 코너는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대로 나의 가족모임으로 연장된다.


이 코너와 같이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가족모임이 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시간 남짓의 온 가족 총출동 행사를 끝내고 나면 나는 맛있는 고가의 식사를 즐겼을 뿐인데 늘 지치고 피곤하다. 아마도 우리의 뇌는 쉬지 못한 탓일 것이다.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내내 '가, 족같은' 행사를 치른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는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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