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산다는 것

인생에서 바닥을 보이지 않는 방법

by 낙산우공

EBS의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자기 집을 손수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집 짓기에 대한 로망과 현실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몇 년째 이 방송프로그램을 섭렵하면서 내 은퇴 후의 삶을 보다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모든 게 비현실적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은퇴를 한다는 사실조차...


며칠 전 방송에서는 은퇴 후 전원주택을 지은 노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경기도 양평의 경사지에 집을 짓게 된 부부가 2층까지 건축허가를 받아 설계를 마치고도 끝내 단층집을 짓게 된 사연이 공개되었다. 법적으로 조망권(일조권과 다름)은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2층을 올려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들 부부는 뒷집의 조망을 해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이를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뒷집의 요구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2층을 포기하는 걸 안타까워하던 아내에게 남편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살면서 가장 바닥까지 가는 게 법대로 하는 거라면서 우리는 "법 앞에서" 살자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망치로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자주 법적으로, 법대로라는 말을 한다. 법에 따라 문제가 없으면 사소한 일에도 핏대를 세우며 싸운다. 그렇게 언제나 법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내 권리는 법적으로 제재받지 않는 선까지 보장받고 싶어 하는 심리다. 양보란 없다. 그런데 사연의 주인공은 '법대로'가 아니라 '법 앞에서' 살자고 말했다.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이란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이다. 모두가 법을 기준으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면 법원은 마비될 것이다. 법원은 형사범을 재판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불법이나 위법이 되지 않는 범위 혹은 그렇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범위에서 행위를 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과 인간이 동류가 되는 순간이다.


법에 호소하고 법정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일을 위 사연의 주인공은 바닥의 삶이라 칭했다. 사실 우리는 그것이 바닥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바닥을 감수하면서 이익을 챙기려 했을 뿐이다. 인생의 바닥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잃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시로 바닥을 경험하며 산다.


나는 오늘도 아침 출근길에서 바닥을 경험하였다. 막히는 1차로를 피해 2차로로 달려오던 차가 끼어들려 할 때 경적을 울리며 막아섰다. 그러면서 그들의 안하무인격 행동에 혼자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들의 뻔뻔한 새치기에 흥분하는 나 역시 바닥이었다. 그들은 법을 어겼고 나는 법을 어긴 그들을 사적으로 응징하려 했으니 말이다.


법과 공권력은 사적 제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법에 호소하기도 전에 법의 집행자가 되려고 한다. 바닥이 아닐 수 없다. '법 앞에서 살자'는 말을 남긴 사연의 주인공은 30여 년 해군장교로 복무하신 분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참군인'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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