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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l 20. 2021

조직을 사랑하는가?

애정의 조건(2018. 12. 13)

자고이래로 모든 조직에는 조직 논리가 있다. 조직이 이성을 가진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구성원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한다. 예컨대 인사나 보수 등과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그 결정이란 것이 조직 구성원 중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일부 고위직 구성원의 합의체 또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독단에 의한 것이지만, 그러한 결정은 결국 조직의 결정으로 통보된다.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조직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조직의 결정에 홀로 저항하기 어려운 힘없는 구성원은 조직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힘겨운 생업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


이렇게 실체도 모호한 조직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있지만, 조직의 이익이라는 논리로 한 개인의 권익을 침탈하는 일이 정당화되어가면서 조직의 논리를 명분으로 실리를 챙기는 이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증폭되어 왔다. 모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합리적 결정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탐욕스러운 뒷거래를 짐작하는 것이 이제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린 사회는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서는 얼마 전부터 조직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외부 인사를 동원하여 조직을 진단하고 이제껏 조직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주류 집단에게 적폐 세력이라 규정하고는 이들을 쇄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간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층의 입장에서는 분명 억울한 부분도 있을 테고, 가슴 뜨끔한 지적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적폐라 공격하면서 칼자루를 휘두르려는 권력 역시 그 적폐들과 한통속이었던 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이들 간의 이전투구는 그야말로 진흙탕을 헤집고 있다.


쇄신의 주체와 쇄신의 대상 사이에서 어떠한 이해관계도 얽히지 않은 극소수의 비주류에 속하는 나의 경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들을 지켜보고 싶으나 그 싸움의 결과에는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는 조직원이기에 그렇게 한가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없는 노릇이다. 며칠 전 졸지에 쇄신의 대상이 되어버렸으나 아직은 주류 집단에 속해 있는 같은 부서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였다.


이제껏 조직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대우를   있는가. 그간 소외되어 왔다고 외치는 당신들은 과연 조직을 사랑하기는  건가? 라고 말이다.


이에 발끈 한 다른 동료는 내가 얼마나 조직을 사랑하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느냐며 반박했다. 그러자 이들을 비난했던 친구는 그렇게 조직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이 조직이 망가져서 아무도 오려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느냐며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이제껏 외부의 권력 다툼에는 관심 없이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던 우리 부서에 이런 묘한 기류가 감지된 것은 바로 그 조직혁신과 적폐 논란 탓이다. 밥그릇을 건드리려는 이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는 없다. 그것이 꼭 개의 세계에 한정된 일일까 말이다. 썰렁해진 부서 분위기에 마음이 상한 나는 급기야 아래와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세상에 어디 사랑할 것이 없어서 조직 따위를 사랑하는가. 가족, 친구, 애인, 프로야구단.... 세상에 사랑할 것이 널렸는데 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랑을 하느냐고...


조직은 충성의 대상도 애정의 대상도 될 수 없다. 다만 조직은 존중의 대상일 뿐이다. 나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 생업의 뿌리가 조직에 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누구도 자아실현을 추구할 여력이 없다. 나의 존엄과 내 삶을 보장해 주는 근간이 안정된 생업에 있으며, 그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조직이 버팀목이 되기에 나는 나의 조직을 존중한다. 따라서 조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중에 터무니없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조직의 요구와 결정이 형편없고 어리석으며 탐욕스러운 한 권력집단에 의한 오만의 결과인지 혹은 조직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인지 정도는 따져본다.


물론 내가 따져본 결론이 전자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조직을 버리는 것 또는 그 오만한 결정에 부역하지 않고 버티는 것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우린 조직 따위에 매여서 내 삶의 가치를 훼손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조직은 회사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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