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상처받지 않는 곳에서

지선

by 오늘도 나마스떼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났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는 뒤바뀐 시차와 왜인지 모를 왕성한 식욕에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살면서 딱히 가리는 음식이나 향신료 같은 것은 없어서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이 되진 않았는데 여행을 가면 음식을 가리지 않는 대신에 많이 못 먹는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나든 그날 저녁 숙소에서 먹는 과자 한 봉지와 맥주 한 캔이면 '이 순간이 너무 황송하다.'라고 느낄 만큼 만족스러워서 식도락을 즐기는 여행을 하기보단 간단하게 때우듯이 음식을 먹고 한 끼 정도는 자주 건너뛰었으니까요. 오늘도 많이 걷게 될 텐데 몸이 무거운 것도 싫고 졸려서 만사가 귀찮은 느낌도 싫고, 어릴 때는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고 말이에요.


이번 여행은 미식의 나라라는 튀르키예를 다녀오게 되어서 나름 먹어야 할 음식 리스트들을 작성하고 백종원 선생님의 튀르키예 식도락 여행 영상도 열심히 시청하며 가능하면 하루 두 끼 이상은 현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보자는 다짐을 했는데요, 식재료도 신선하고 맛도 좋았지만 1인분을 다 먹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먹기 싫어서라기보다 배가 너무 빨리 불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왜 밥을 두 공기씩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마트를 갈 때면 시식코너 근처는 부담스러워서 피해 가는 경향이 있어요. 물건을 사지도 않을 저에게 괜한 노력을 쏟을 아주머니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음식을 맛보고 그냥 가야 하는 상황도 민망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인데요, 마찬가지로 여행 중에도 식당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졌답니다.


못 들은척하기엔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 말을 무시하나 싶고 계속 들어주고 있기엔 갈 길도 바쁘고 또 일일이 다 먹거나 살 수도 없고 이럴 땐 다들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 팁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여행을 통해서 낯설고 멋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마주하고 싶었는데 저는 어느 곳의 땅을 밟고 서있든지 늘 똑같은 패턴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저일 뿐이더라고요,


숙소로 돌아와서 하루 있었던 일들을 돌아볼 때는 제가 못 들은 척 지나쳤던 상인들의 모습도 조금 생각나고 그래서 마음이 완전히 평화롭지는 못했어요.


이 여행지는 도시 쪽으로 갈수록 호객행위가 심해지기 때문에 거리에서 길을 찾는 모습만 보여도 택시 기사 아저씨가 빵빵 거리면서 차를 세우시거든요. 이런 것들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서 저도 자기 전에 현아 님처럼 다음날의 평온과 안식을 위한 기도를 해봐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난 어떤 기도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새우처럼 웅크려서 잠들곤 했습니다. 쓰고 보니 제가 너무 소심한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오네요.




한국에서 겨울 같이 춥던 3월 중순에 출국을 했는데요. 12시간 비행 끝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튀르키예 남부 지역으로 이동 후, 버스로 다시 4시간을 달려 지중해의 작은 해안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3일 정도를 머물게 되었어요.

기온이 28도를 넘는 초여름의 날씨로, 땅을 밟는 순간 농부의 딸답게 본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 여기는 무엇을 심어도 다 잘 자라는 천혜의 땅이다. 정말 축복받은 땅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을까!


과실수를 가로수로 쓰고 있었는데 나무마다 오렌지며 레몬이 정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사진으로만 보던 오렌지 꽃이 가득 핀 나무를 보는 것도 너무 환상적인 경험이었어요, 오렌지 꽃은 아로마 오일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도 해서 사진을 보면서 공부했던 기억도 떠오르고 낯선 곳에서 나만 알던 꽃이 저를 알아차리고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식물학 수업 시간에 한국에서 가로수를 선택하는 여러 가지 기준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가, 가로수는 상처를 받을 일이 많기 때문에 상처에 강한 나무여야 한다고 배웠어요. 예를 들어 보통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하나는 상처가 날 경우에 송진이 피처럼 흐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며 이 지역엔 가로수도 큰 상처를 받을 일이 없어서 저마다 멋지게 자라나 열매까지 주렁주렁 내놓을 수 있는 곳이겠구나. 그만큼 평화롭고 멋진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넓은 튀르키예라는 나라에서, 딱 집어 작은 해안 마을에 오게 된 이유는 바다가 보이는 유적지에서 모닝 요가 수업이 있다는 정보를 보게 되어서였는데요. 이리저리 검색을 해봐도 요가수업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후기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어서 왓츠앱으로 선생님에게 문의를 하는 과정을 거쳐서 수업을 예약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요가 수업 날 아침에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요, 요가 수업을 기다리며 설레었던 적은 굉장히 오랜만이었습니다. 요가는 일단 수업을 시작하고 나면 하는 동안 무조건 좋고, 끝났을 땐 늘 ‘요가해서 참 좋았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 신나지는(?) 않는 경향이 있는데 저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무튼 이 날의 수업은 중상급 정도의 하타 요가 수업이었습니다. 유연함을 필요로 하는 동작도, 힘을 필요로 하는 동작도 있었는데요. 이끌어주시는 선생님의 모든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전 세계 공통적인 요가 아사나 이름을 통해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게 느껴졌어요. 전에 일본에서 요가수업을 들었을 때도 했던 생각인데, 요가를 수련함으로써 어느 나라를 가도 요가하는 사람들끼리는 통할 수 있는 언어를 하나 더 익힌 것 같은 느낌이었죠. '모국어+요가어' 해서 그래도 두 가지의 언어는 할 수 있다는 그런 느낌말이지요!


고대 극장으로 사용했었다는 유적지에서 요가를 하는 것도, 요가하는 내내 눈앞에 끝내주게 멋진 지중해가 펼쳐져 있는 것도 굉장한 일이었지만 수업 시간 동안 길 고양이와 덩치 큰 개들이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잠을 자기도 하고 요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하는 것이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고대 극장의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몸짓을 흉내 내고 있는 인간들을 편하게 관람하고 있는 개, 고양이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재밌지 않나요?




이 요가 수업은 일정 금액 이상의 수업료를 기부 형식으로 받고 있었는데 그 돈으로 거리의 고양이와 개들을 위한 사료를 사고, 치료비 지원을 한다고 해요.


길고양이들 모두 아픈 곳 없이 깨끗하고 건강해 보였고, 거리에서 품종 소형견들은 거의 볼 수 없고 족보를 알 수 없는 대형견들이 주를 이뤘는데 모두 온화하고 나른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어요.


만약 한국 골목에서 이런 외형의 개를 마주쳤다면 정말 겁에 질렸을만한 그런 큰 개들이었는데 여기선 한 줌의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죠.


내가 이 동물 친구들을 만져도 절대 나를 물거나 해하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 친구들도 이곳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고 곁을 내주는 모습들이 보였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한 후에 숙소에 돌아와 다능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를 읽게 되었는데 편지 내용 중에 이런 말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너무 마음 아플 것 같아서요.]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이곳은 나무도, 고양이도, 개도, 인간도, 그 무엇도 상처받을 일도, 마음 아플 일도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잠시 머물러서 보고 가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 이곳은 그런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받는 사람이 없으려면 나부터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지 않아야겠지요, 그래서 아힘사(비폭력)라는 요가 철학을 생각하면서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긴 여행 중에 먹는 한국 컵라면이 저의 영혼을 달래주어서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는데요. 나현 님에게도 소울푸드 같은 것이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배가 출출한 새벽시간에 글을 마무리하게 돼서인지 모르겠지만요!



[사진 : 이지선 作, 안티펠로스(Antiphel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