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
지선 선생님 편지를 보면서, 저도 서서히 대지를 달궈가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고 어슬렁거리면서 작은 해안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요가 수련을 엿본 기분이 듭니다.
이국의 언어 사이에서 며칠을 헤매다가 아는 요가 언어가 나올 때 갑자기 귀가 쫑긋해지는 기분은, 기대와 달리 너무 짜거나 기름지거나 느끼한 음식에 지쳐갈 무렵 후루룩 한 젓가락 흡입한 라면이 주는 안도감 같은 거겠지요?
해외에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지만 알고 있는 맛이 주는 기쁨도 크기에 여행의 중반쯤에 한국 컵라면으로 입맛을 돋우거나, 입국 후 첫 끼는 라면을 선택해 한층 더 매콤하게 느껴지는 국물과 면발을 흡족하게 음미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천 미추홀구 소성로에 10년 동안 거주하면서 평일 점심과 저녁은 거의 외식으로 해결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사무실 인근 식당과의 인연도 덩달아 10년째 이어지고 있어요. 식당 사장님들이 차려주신 음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해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의 파고를 무사히 잘 넘겼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매일 맛깔나는 밑반찬이 바뀌고 주메뉴가 빨리 나오는 ‘수림’은 하숙집 식당과 같은 마음으로 다니는 곳이에요. 밥 먹을 시간이 20분 밖에 없는데, 집밥 같은 밥은 꼭 먹고 싶을 때 사무실을 뛰쳐나가 고등어구이와 순두부찌개를 먹고 나면 허했던 속이 든든해지면서 오후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힘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외근을 다니느라 식사 시간을 놓치거나 급하게 일 처리를 하느라 밥 먹을 짬이 도저히 나지 않을 때는 ‘장원김밥’에서 참치김밥을 포장해 와서 사무실 책상 앞에서 김밥을 오물거리면서 모니터를 보는데요. 뉴요커에게 샌드위치가 있다면 우리에겐 김밥이 있어 남부럽지 않은 느낌입니다. 특히 점심시간이 지나 포장된 김밥을 부리나케 싸 들고 가려고 하면 사장님은 오늘 많이 바빴냐면서 무심히 말을 걸어주시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날엔 역시 매콤한 맛이 제격이라 ‘본스치킨’을 찾아 골뱅이 소면을 시킵니다. 사장님의 입담도 좋은 곳이라 사장님과 가벼운 대화를 하고 나면 세상사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단골집답게 저의 절친, 동료들, 부모님 얼굴을 모두 보셨기에 일행이 바뀌면 단번에 알아보시기도 합니다.
일이 너무 고된 날은 팔다리에 아무런 힘이 들어오지 않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바다천국’ 횟집에 가서 우럭회를 주문해서 고추냉이와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매번 술도 마시지 않고 오직 회만 먹고 1시간 이내로 나오는데,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가깝게 있어 해산물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에요.
회를 먹으면서 요가 이야기를 신나게 했더니 사장님이 횟집 근처의 요가원을 추천해 주시기도 하였는데요. 사무실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요가원이라 잠시 솔깃하긴 했지만, 저는 기존 요가원을 열심히 다니기로 했고, 같이 회를 먹었던 친구는 그 요가원에 등록하기도 했지요.
전쟁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사장님들은 잠시 식당 밖에 나와 담배를 피기도 하고, 법원 가는 길에 식당 앞에서 잠시 숨돌리던 사장님과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를 하거나 근황을 묻기도 하는데요. 이럴 때면 종종 소성로가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세트장 같아서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툭하면 마주치고 대화하고 밥 먹으면서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 시절 나를 키운 건 엄마의 밥이었지만, 직장인인 저를 키우고 유지하게 한 팔 할은 소성로 맛집들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모든 맛집의 기준은 소성로 맛집을 능가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기도 합니다. 다들 소성로 맛집으로 한번 놀러 오세요!
공복 상태에서 요가 수련을 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오후 6시가 되면 뱃속의 아우성에 못 이기는 척 식당으로 가 밥을 조금만 먹겠다고 다짐하건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밥공기는 다 비워져 있고, 출렁이는 음식과 함께 수련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소성로 맛집들로 포위된 사무실에서 식당을 들리지 않고 요가원까지 가는 길이 제게는 가장 어려운 관문인 것 같아요. 많이 배고픈 상태에서 요가원에 갔다가 수련 내내 음식 생각이 머리에 둥둥 떠다닌 적도 있고요. 요가 수련이 끝나자마자 공복 요가에 대한 보상(?) 심리로 닭강정을 실컷 먹기도 한 적도 있네요.
이렇게 웬만한 음식을 다 잘 먹는 저이지만, 유독 기내식은 맛이 없어 거의 먹지 않고 쌓아두는데요. 옆자리에 앉은 현아 언니가 제가 못 먹는 기내식조차 맛깔나게 먹었고, 그런 언니의 모습이 참 이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지금도 현아 언니의 먹는 모습을 좋아하고 있어요.
상대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상대가 먹는 모습에 내심 흡족한 기분이 든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깊다는 방증이겠죠? 언니는 요즘 어떤 상황 또는 모습에서 애정이 느껴지나요?
[사진 : 지혜롬作, 소성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