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나마스떼 Sep 08. 2024

요가 인연

나현

언니의 쾌속선 같은 답장을 받았네요.

그러나 저의 답장은 쾌속선에 굴하지 않고 넘실넘실 느린 강물처럼 보내요.     


언니의 말대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요가의 시간이었어요.


요가를 하는 시간만큼은 외부로만 한없이 펼쳐져 있었던 인지기능을 내부로 소환해 나의 목소리를 들어 보더라고요.      


내가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사건도, 의뢰인도 제대로 보고 풀어나갈 수 있을 텐데, 하루 동안 삐뚤어져 있던 몸과 마음을 다시 조정하는 시간을 요가로 보내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생채기 났던 마음을 발견하고 호호 온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하고요. 유달리 날이 선 채 받아들였던 말들에 박혀있던 가시가 혹시 내가 만들어 놓은 가시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 가시를 스스로 뽑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요가원에서의 인연들이 하나둘씩 생기더라고요.




지난 4월에는 요가원에서 주최하는 요가캠프로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과연 요가라는 공통점 하나로 어떻게 함께 시간을 꾸려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 반, ‘최근 모르는 사람들 여행을 가지 않은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반으로 요가캠프에 등록했어요.       


제주도는 이미 여러 차례 여행지로 다녀온 곳이라 낯설지 않았지만, 요가캠프로 가니 제가 알던 제주도는 또 다른 얼굴로 저를 맞이해 주더라고요.


다 함께 봉고차 한 대에 올라타 제주도를 누비면서 다녔고, 곽지해수욕장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요가를 했고, 사려니 숲길에서는 요가 자세로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봉고차를 타면서 이동할 때는 예전에 학창 시절에 태권도 학원에 다녔던 때의 기억도 나더라고요. 그때 봉고차를 타고 집과 학원을 오갔고, 저 멀리 단양으로 전지훈련을 갔었거든요. 아마 그때의 몸과 마음이 되어 요가캠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저는 태권도 학원과 미술 학원을 가장 즐겁게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국영수 학원 대신에 태권도와 미술 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고, 그 당시 저는 학교보다도 학원이 더 재미있었던 때였어요.


하교 후 태권도와 미술 학원에서 저는 청어처럼 파닥거렸고, 지금도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그때의 순간들이 곱게 펼쳐져요.     


태권도라는 운동 하나로 쉽게 뭉쳤고, 도장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했던 것 같아요. 말보다 몸이 먼저인 공간에서 담박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움직이면서 시간을 쌓아나갔고, 그 속에서 저는 편안함을 느꼈어요. 지금도 이어지는 운동에 대한 호감은 아무래도 태권도가 처음 저에게 심어준 좋은 기억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봉고차에서 여러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내뿜는 체온과 웃음소리, 노면의 마찰에 함께 들썩이고 부딪히는 어깨가 태권도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저는 가끔 법정과 검찰청, 그리고 사무실은 ‘언어의 감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원고, 피고, 피고인, 피해자들의 온갖 말들이 난무하고 있고, 그 말들 속에서 가장 그럴법한, 가장 사실처럼 보이는 말을 찾기 위해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함께 언어의 감옥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죠.      


언어의 감옥 속 지리멸렬한 토의에 멀미가 날 무렵, 몸을 움직이고 나면 그 멀미가 진정되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 저에게는 요가가 진정제예요. 그 진정제를 맞고 나면 한결 너그럽고 웃음이 헤픈 사람이 되어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해요.     


요가로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제주도 요가 캠프에 있었고, 마음의 문턱이 많이 낮아져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본 사람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어떻게 요가를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요가가 삶의 구심점이 되었는지, 하루 종일 요가 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금세 흘렀어요.     


불과 4년 전에는 제가 요가 이야기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맞는구나 싶어요.     


요가캠프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는 약 두 달이 지나 인천에서 다시 만났어요. 다시 만나자 다시 요가캠프로 돌아온 듯 요가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어요. 제게 또 하나의 요가 인연이 생긴 거였어요.     


앞으로 또 어떤 요가 인연이 생길지, 감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매주 요가원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회원들이 모두 요가 인연이겠지요. 요가원 매트 위에서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수련하고, 마치면 상쾌한 얼굴로 인사하는 일상이 쌓여 인연이 되겠지요.     


그리고 언니도 제게는 귀중한 요가 인연 아니겠어요?


서울과 인천을 오가면서 함께 요가를 수련하기도 하고, 만나면 요가 이야기로 한참을 수다 떨고.

그리고 이렇게 편지도 주고받고.     


그러고 보니 언니가 요가원에서 만난 요가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답장 기다릴게요.     




[그림 : 안나현 作, 요가인연 1]




이전 04화 바라보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