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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나마스떼 Sep 15. 2024

몸의 감각

나현

장마의 한가운데서 편지를 써요.


이상기온 탓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나날들이 이어지다 오늘은 장마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온종일 비가 내렸어요.


매년 장마가 오면 살아나는 몸의 감각이 있는데요.


빗줄기가 땅과 함께 제 심장도 한참을 두드리는 기분이고, 빗줄기가 이끄는 대로 맨몸으로 산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림동에서 처음 고시 공부를 시작했을 즈음에는 세찬 빗소리만 들어도 모든 일을 제쳐두고 관악산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 마음을 잠재우는데 꽤나 고생을 하곤 했어요.


툭하면 솟구치는 심장 박동을 평균율로 조정하는 것이 고시 공부의 가장 큰 난관이었어요.


세상에 신나는 것이 정말 많은데,

왜 저는 가만히 앉아서 법학 서적을 보는 생활에 당첨된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곤 했어요.     




대학 때 저는 산악부 생활을 꽤 열심히 했었는데요.


대학 신입생 때 또래 친구들처럼 주말에 소개팅이나 쇼핑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성미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주말을 좀 흥미롭게 보낼 방법을 찾다가, 주말에 야영을 하면서 1박 2일 혹은 2박 3일을 산에서 보내는 산악부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산악부에서는 기말고사를 마친 후인 여름과 겨울에 기말고사 하계 및 동계 장기 산행을 떠나는데요.


보통 여름에는 설악산에, 겨울에는 지리산에 가고, 큰 산을 가는 만큼 종주를 하면서 3박 4일 혹은 4박 5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하계 산행 기간이 장마 기간이랑 겹치는 때가 종종 있었어요.     


아마 지금 같으면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갈 거 같은데, 그 당시에는 산악부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라 장마 따위로 신입생이 하계 산행을 빠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설악산 공룡능선의 사악함에 ‘악’ 소리 나는 산행이 될 것이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악산 초입에 들어섰는데, 처음부터 비가 정말 억수처럼 쏟아졌어요.     


판초(우의)를 입고 있었지만 줄기차게 퍼붓는 비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비와 한 몸이 되어 능선을 올랐고, 한참 동안 걷다 보니 온몸을 두들기는 빗소리와 나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산비탈을 무작정 걷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도 우중 산행을 종종 했었고, 강렬한 우중 산행의 후유증으로 비가 오면 온몸의 세포가 활성화되어 비를 맞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지경에 이르러서 고시생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만의 감상에 빠지곤 했어요.


그래서 비가 오면 그 감상을 끌어안고 끙끙대면서 공부했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비가 와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오늘도 요가 수련을 하러 한달음에 요가원으로 갔어요.


수련 때 선생님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진 않지만 몸의 감각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해요. 사적으로 대화를 해보진 않았지만 선생님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 나와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요가를 할 때 선생님이 제 몸의 가동범위를 살펴보면서 핸즈온을 해주시는데요.


선생님이 핸즈온을 통해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굽은 허리를 좀 더 펴고 팔을 뻗어야 해요.”라든가, “(오늘은 힘들어 보이니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해봐요.”라는 등의 말을 걸고,


저는 그에 응해 “저는 허리를 펴는 게 잘 안 돼요. 끙”, “선생님이 격려해 주시니 한번 해볼게요.”라는 대답을 동작을 통해 표현하는 것 같아요.


언니, 최근 저는 요가원을 새로 또 등록했어요. 이로써 저는 요가원을 세 군데 등록해서 다니는 '친자(요가에 미친 자)'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요. 세 번째 새로운 요가원 등록은 몸의 감각이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요가 시퀀스가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저를 편애(편애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하신 것도 아니었지만, 매주 선생님과의 수련 시간을 즐겁게 보냈는데요. 그러다 작년에 다니던 요가원이 폐원하면서 선생님과 수련 시간에 만날 수 없게 되었어요.      


요가원은 폐원하였지만 요가 수련은 그만둘 수 없었기에 다른 장소에서 요가 수련을 이어나갔는데,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따뜻한 핸즈온으로 주고받던 대화가 계속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용기 내서 작년 11월 경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혹시 선생님이 요가원에 다시 강의를 나가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요.


그런데 제 기준에서 한참을 지나도 선생님 연락이 없길래 ‘운 좋게 첫 요가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구나.’하는 마음으로 현재에 잘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올해 5월 경 선생님한테 연락이 온 거 있죠. 새로운 요가원에서 강의를 하신다고요. 다행히 멀지 않아서 저는 1일 체험권으로 요가원 수련을 했고, 역시 예전의 몸의 감각이 다시 떠올랐어요.     


우중산행이 남긴 몸의 감각처럼, 요가도 제 몸에 차곡차곡 무늬를 남기는 중이었던 거죠.


요가수련을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서 고민을 했어요.


이미 두 군데의 요가원을 다니고 있는데(두 군데의 요가원을 다니게 된 이유는 차차 편지에서 밝힐게요), 세 군데의 요가원을 다니는 것이 과욕이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그때 몸의 감각들이 새로운 요가원을 등록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더라고요. 매주 한 시간 흡족한 수련을 통해 제 몸은 더 좋은 컨디션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세 번째 요가원을 등록했고, 매주 화요일 수련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몸의 감각을 따라 두 군데 요가원에 '머물기'보다는  세 군데 요가원 다니기를 '새롭게 나아가는' 중이고, 이렇게 저의 요가인연은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요가원에서 저도 좀 더 진취적인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드리려고 애쓰고 있긴 한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언니와 각자 요가인연 1명씩 이 편지에 초대하자는 얘기를 나눈 후, 저의 요가 선생님께 언니와 제가 주고받는 편지를 말하면서 저의 요가인연으로서 편지 쓰기에 함께 동참하실 수 있을지 물어봤더니,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그래서 언니에게도 소개하고 싶어요.

저의 요가인연, 지선 선생님을요.


지선 선생님!

내일은 화요일인데,

요가원이 휴원이라서 못 보겠지만 편지로 인사를 드릴 수 있겠네요.


선생님은 요새 무탈하게 지내고 계시죠?




[그림 : 지혜롬 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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