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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Oct 05. 2021

제 안부는 묻지 말아 주세요.


잘 지내니?


단톡방이 조용하니 알 수가 없네. 잘 지내니?

“그냥 안부 전화한 건데 안 받네. 잘 지내니?”


시원스럽게 울리는 카톡 알림음과는 달리

머리가 지끈하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핸드폰만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답하지 못했다.


출처 : 글그램



‘그냥 잘 지낸다고 하면 될 것을…’


이따금 떠나보낸 아이가 미친 듯이 그리워

갑자기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터지고

하늘이 원망스러웠기에

잘 지낸다고 할 수 없었다.



‘잘 지내니?’를 ‘다시 임신했니?’로

받아들일 정도니 정말 안 괜찮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답하기엔

더 이상 나는 설거지를 하는 내내 울지 않고

홀쭉해진 배를 궁금해하는 동네 엄마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길을 돌아가지도 않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아이와 잘 웃고 있다.

게다가 이제 브런치 작가가 되어 유산 이야기를

내 입으로 먼저 떠벌리며 글도 쓰고 있다.



나 괜찮은 걸까?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유산한 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나의 안부를 종종 묻는 그들이

하나 둘 차례로 둘째, 셋째를 출산하고

두어 달 남짓 지났을 때 나는 유산을 했다.


첫 아이가 서로 동갑인지라 매일 실시간 일상을 나누며

끈끈한 육아 동지애를 자랑하던 우리 사이에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아이를 잃은 슬픔 그 자체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유산으로 인해 관계가 엉망이 된 이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나를 더 아프게 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관계는 없기에…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왜 내 아이만 태어나지 못한 건지’

속 좁은 나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과 육아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도

내 머릿속에는 둘째, 셋째가 있는 그들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부럽고 괴로웠다.


꿈꾸던 완전체 가족을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던 지인들과는

유산 전이나 후나, 아이가 하나 거나 둘이거나,

그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유산 이후,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우리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고

완벽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독 일상을 공유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이에서

왜 나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의 이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까?

 

주눅 들기만 할까?


그들의 삶을,

그들과 다른 내 삶을 왜 인정할 수 없을까?


 



안 괜찮지만 잘 지내고 있어요.

다르지만 잘 살고 있어요.

 

언제쯤 이 말을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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