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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Jun 29. 2021

달님, 왜 제 소원은 안 들어주시나요?

가만히 누운 채, 멍하게 눈만 깜빡여 본다.

암막 커튼으로 인해 아직 어두컴컴한 방안이지만 커튼 틈 사이로 커튼 색과 같은 핑크빛이 언뜻 눈에 들어오긴 한다.


아침이 밝았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간절히 바랬던 둘째를 뱃속에 20주나 가까이 품고 있다가 하늘나라로 보내준 후에는 유독 아침에 일어나기가, 그리고 밤에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첫째 아이가 있기에 그저 일상은 돌아간다.

오늘도 딸아이와 나는 둘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벌써 다 먹었네!! 치카치카하러 갈까?”

웬일로 아이가 얼굴 붉히고 잔소리하기 전에 아침을 제시간에 다 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는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하고 싶어?”

요즘 들어 질문이 늘었고, 그 질문의 형태 또한 다양해진 6세 아이다.


“음.. 엄마는 커피 마시는 게 좋고, 이렇게 oo이 안고 있는 게 좋고, 아빠랑 맛있는 거 먹는 게 좋아.”


아이를 꼭 안아주며 곧 아이를 등원시킨 후, 혼자 마실 커피의 달콤함에 벌써 취하고 주말에 먹을 맛있는 음식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한껏 고조된 어투로 대답했다.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내가 대답했으니, 아이에게도 되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oo 이는?”


아이가 귓속말로 나에게 속삭인다.

‘우리 둘 밖에 없는데.. 귓속말이라니..’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고 내 귀에 자그마한 입을 가져다 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게 좋고 하고 싶어.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감상에 젖을 밤 시간도 아닌 더구나 이런 아침 시간에..


가을에 동생이 태어난다고 가을만 기다리던 첫째 아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여름에 동생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앞뒤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한들 고작 5세였던 아이가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유산 이후, 한동안 ‘심장, 죽음, 아기’라는 단어는 우리 둘의 대화에 금기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우리는 자연스레 동생 ‘딱풀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는 했다.

어린이집 등원 길, 유독 파랗고 높은 가을 하늘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떠나버린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진 날이 있었다.

그때 딸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먼저 말을 했다.

“엄마, 우리 딱풀이는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에 잘 있겠지?”


어른스러운 그녀의 대답에 가을에 만나기로 해 놓고 먼저 가버린 아이 생각에 눈물짓던 나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동생이 태어난다던 가을이 지나, 시간은 벌써 늦겨울 2월에 접어들었다.

“엄마,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게 좋고 하고 싶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도 큰소리로 말할 건 아니라 생각해서 조심스레 귓속말로 한 건지..


나는 어떤 어른스러운 대답으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을까?


그저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달님을 향해 원망의 눈물을 흘릴 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른 엄마들은 다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할 수 없는 엄마다.


달님,  제 소원은  안 들어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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