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제도, 오늘도 아이는 하원 후, 아무 일 없어 보였다. 친구에게 서운한 일도, 넘어져 다친 일도 없어 보였다. 유치원 가방 한가득 든 종이접기 작품을 연신 자랑하기만 했다.
“유치원 생활 잘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아무래도 전화할 일이 드물죠.”
지난달 대면 상담 때 웃으며 말하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어제 보내주신 가족사진을 보며 반 친구들에게 가족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oo이가 가족 소개를 하고 나서 친구들이 질문을 했어요.”
왜 가족이 3명이야?
“그러자 oo이가 ‘나도 동생이 있었는데,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하늘나라로 갔어’라고 얘기했어요.”
(다둥이가 많은 동네라는 건 진작에 짐작했지만 아이반 22명 중에 외동이 5~6명뿐이라는 건 나에게는 꽤 충격이었고, 반 아이들에게는 3명인 가족이 신기(?)했나 보다.)
왜 하늘나라로 갔냐고 연이어 질문하는 반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도 아차 싶어 얼른 다음 친구의 가족 소개로넘어갔다고 했다. 가족 소개 시간이 끝나고 아이를 따로 불러 아까 기분이 어땠냐고 물으니 조금 슬프기는 했지만 괜찮다고 또박또박 말했다고 한다.
이내 웃으며 교실로 돌아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아이였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과 상황에 놀라고 아이가 걱정된 담임 선생님이 전화가 온 것이다.
그렇다. 어제 하원 길, 나는 아이에게 우리 가족 소개를 어떻게 했는지 물었었다.
“엄마는 삼십팔 살, 아빠는 사십 살이라고 말했어.”
숫자에 관심이 생긴 아이와 100까지 적힌 수 읽기 표를 보며 나이 얘기를 많이 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신랑에게도 전해주며 우리 셋은 깔깔 웃었다.
친구들과 동생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생이 없어서 속상할까?’
‘동생이 다시 생기면 좋을까?’
선생님과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굳이 어제 일을 다시 들추며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거나 달래주려 하지 않았다.
유산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그려온 가족 그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엄마, 아빠, 나, 동생 딱풀이 이렇게 4명’
아이가 가족 소개를 신나게 하는 것을 그저 들어주었다.
그리고 일 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때 그린 그림과 우리 마음속에는 있지만 가족사진에는 있을 수 없는 동생을 아이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사이 아이는 동생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고, 언제 다시 그럴지도 모른다.
동생이 있는 아이, 외동인 아이, 언니나 오빠가 있는 아이 등 가족의 모습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저 내 바람과 선택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세상을 원망하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자책의 슬픔에 빠지는 날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또한 내 선택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4명의 가족이 좋으면 의학의 힘을 빌려 더 노력하라는 지인들의 조언에 지금 우리에게는 이 3명 자체로 온전하고 충분하다고 말하는 진화된 나이기에...
비혼 주의자, 딩크족,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정, 조부모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삶의 모습은 애당초 비교의 대상도, 행복의 기준도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