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둘째 아이에게 다시 쓰며 또 하고픈, 잘하고픈 육아였는데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음 임신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와 용기가
이제는 없었다.
책 대로, 이론대로 안된다는 걸 알지만
또 읽어야 할 것 같은그 노란책_임신출산육아 대백과,
아이 발달에 있어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할 것 같아
사들였던 국민 장난감,
이유식을 거의 먹지 않고 모유로 연명했던 딸아이 덕에 포장도 뜯지 않은 이유식 용기 등 자잘한 것들은
임신 중이거나 최근에 출산한 타지 친구들에게
택배를 보냈다.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아기는 태어나겠지만
유독 내가 유산할 즈음 나만 빼고 다 임신을 하고
건강히 출산을 한 거 같은 상황이었다.
육아용품을 비우지 않고
준비하고 기다린 나와 달리 덜컥 임신한 그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더니 다 틀린 말 같다.
하긴 나도 첫 아이는 계획 임신이 아닌
오히려 실수에 가까우니
내 아픔을 핑계로 함부로 입방정을 떨어서는 안 되겠지...
설문조사 후 사은품으로 받은 턱받이와 양말조차
내 품에서, 내 집 밖으로 보내지 못해 많이도 울었다.
동생이 빨리 태어나 어서 턱받이도 해주고
양말도 신겨주고 싶다던 딸아이와의 대화가 생각나고 이제껏 둘째를 기다린 내 간절한 마음과
뱃속에 품고 있으면서 하루하루 충만했던 그 기억들까지 투영된 것이다.
부피가 큰 물건들을 처분해야
공간의 여유가 확 생기고 여백의 미가 살 텐데,
유모차와 카시트는 계속 미루게 되었다.
엄마, 아빠 품에서 유독 떨어지기 싫어했던 딸아이는 유모차와 카시트를 거의 타지 않았다.
가까운 곳을 외출할 때는 유모차를 들고 가긴 했지만
우리는 아기띠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차를 타고 타지의 시댁과 친정을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가 4살이 되기 전까지는…
새 것이나 다름없는 유모차와 카사트를 중고 거래하여 이득을 취한다는 것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산 물건이지만 원래 주인은 딸아이였고,
다시 임신을 함과 동시에
그 소유권은 뱃속 아기에게 넘어간 것인데,
주인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처분해도 되는 것일까...
추억과 애정이 깃든 물건을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 팔아넘겨도 되는 것일까…
딸아이 친구 엄마들이 출산을 앞두고
육아용품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동네 엄마들에게 주기는 또 싫었다.
행여 동네를 오고 가며
내 핫핑크 유모차가 지나가는 걸 보면
떠나간 둘째가 생각나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우연히 맘 카페를 통해 우리 지역에도 미혼모 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고 내 일상살이에만 몰두했지, 피부에 와닿지 않던 현실 세상을 직접마주하니 마음이 찌릿했다. 유모차와 카시트를 비롯한 이불, 옷, 책 등 각가지 육아용품을 직접 방문하여 기증하였다.
주인을 잘 찾아주고 나니 물건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필수템이자 다시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둘째까지 꼭 써야 한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미끄럼틀도 드림하였다. 올망졸망 세 공주님을 키우는 엄마, 아빠가 가져갔고 아이 셋이 미끄럼틀에서 즐겁게 노는 사진을 보내주며 연신 고맙다고 하는 통에 내 기분도 좋았다. 거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미끄럼틀이 사라지면서 느낀 나의 홀가분함은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둘째를 위한 마음도 있었지만 딸아이도 당연히 아직 그 미끄럼틀을 좋아한다고 나는 계속 암시했었다. 사실 딸아이는 미끄럼틀을 제대로 타고 놀지 않았고, 미끄럼틀 옆에 매달리거나 미끄럼틀 위에 짐볼을 가지고 올라가는 등 위험하게 놀아서 내 주의를 수도 없이 받았다.
그렇다. 벌써 5살이 된 아이는 집안에서 타는 작은미끄럼틀이 시시했다. 둘째 임신 확인 후 안정을 위해 두 달 가까이 누워있어야 했던 엄마와 밖에 나가 놀이터의 큰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했다.
이제 oo 이는 언니가 될 거야, 동생 태어나면 잘 놀아줘야 해.
나는 첫째를 큰 아이로 취급하지 않고 동등하게, 아니 더 위해주면서 잘 키워야지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0주 임신기간 내내 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미끄럼틀을 치우고 난 거실 자리에 책상을 놓아주었다. 딸아이는 제법 차분하게 앉아서 가위질도 하고 집중하여 색칠 공부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마냥 몸 쓰기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던 꼬맹이가 아니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자,
누구 언니가 아닌 그저 내 아이가 오롯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채워갈 의미 있는 날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육아용품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내 관심 분야의 책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끄적여진 메모도 찾았다.육아에 진심인 엄마임과 동시에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여자였다.
지금 할 수 없는 둘째 임신, 출산, 육아 대신 여느 때보다 책 읽기를 꼼꼼히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며 결이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배움을 즐기고 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 쓰는 재미를 한층 더 느끼게 되었고, 오늘도 나는 쓰고 있다.
잊고 있었던 작가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있다.
텅 빈 공간은 분명 당신에게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것이다. 물건을 치우지 못하고 과거 속에서 혹은 추억 속에서만 사는 것은 현재를 잊고 사는 것이자 미래로 열린 문을 닫고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