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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Oct 21. 2021

살다 보면 살아진다, 쓰다 보면 살아진다.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불행이 나만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행복은 눈이 있지만 불행은 눈이 없어요. 그냥 랜덤으로 상대를 고를 뿐이에요."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뱃속 아이가 떠나고 내 하루하루는 삐그덕거렸지만 세상은 상관없이 잘 돌아간다.

신랑은 출근하고, 딸아이는 유치원에 갔다.

모두가 떠난 자리...

고요한 적막 속에 내 울음소리만 귓가에 울리는 것이 나조차도 지겨워져 보지 않는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귀에 들어온 남자 주인공의 한마디…


‘불행은 랜덤’이라는 말에 왜 하필 나인지 더 울컥하여 통곡을 하였다.

대사를 곱씹고 또 곱씹어 보며,

그래도 이 불행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안도했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그저 시답지 않은 가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했고, 등장인물의 일에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마음의 여유와 에너지가 없다는 이유로 빠져들기를 거부했던 내가 이 드라마는 정주행을 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진행되는 가운데, 텔레비전을 켜놓고 내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게 맞는 표현이긴 하다.




나는, 내가 주인공인 내 삶에서조차
나를 위로하고 공감할 줄 몰랐다.


미친 듯이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불쌍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싫어서 숨 죽여 울고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털고 일어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모습을 다시 또 만들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이제부터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 거예요. 떠내려갈 거 있으면 다 떠내려가라죠, 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꾸미는 짓은 안 할 거고요.”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치유의 글쓰기’를 믿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울고 싶을 때 울려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떤가, 세상 불행 혼자 다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철부지로 보이면 어떤가.’

마음이 가는 대로 쓰고 또 썼다.



여전히 '치유, 극복'이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든다.

깊게 베인 손가락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새 살이 나고 아물듯, 이것이 그렇게 치유될 일인가?

차가운 겨울바람을 따뜻한 외투에 의지하여 이겨내듯, 이것도 그렇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인가?

치유와 극복에는 슬픔을 초월하고 아픔을 승화시킨다는 의미까지 있겠거니 짐작해 보지만 그렇게 넓게 해석하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좁은가 보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난 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글로 남기는 과정 중에 인생의 당연하고도 진부한 진리가 비로소 온몸에 와닿게 되는 효과가 있긴 했다.



오늘을 살자, 사랑하자!


 

한동안 마시지 못했던 커피 향이 이렇게나 향긋할 수가 없다. 카페인에 약한 내가 누릴 수 있는 건 고작 모닝커피 한 잔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내일 아침에 마실 커피 생각에 설레며 잠이 든다.


"내가 엄마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아? 지구보다 더 크게, 우주보다 더 크게 크게, 엄마 사랑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내 귓가에 속삭여 대는 딸아이의 사랑 고백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다.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먹을까?'

소소하고도 제법 진지한  나의 고민과 기대에 부응하는 신랑의 요리는 오늘이 가장 맛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슬픔이 서려있고 내 입에도 아직 씁쓸한 울음이 남아있을 터인데, 힘든 시간을 함께 한 우리의 사랑이 그렇듯, 음식에도 더 깊어진 풍미가 느껴진다.


상실의 아픔이 더해진 의 일상이 어쩜 이리 더 향긋하고 달콤하고 맛있을까?


나는 이미 큰 불행을 당했으니, 더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이상한 믿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6개월 차에 유산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긴 마당에, 더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더한 일이 생기면 '그냥 죽어야지' 하는 자포자기의 비관이 아니라 지금처럼 살면 된다는, 한껏 담대해지고 긍정적인 내가 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쓰다 보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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