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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작가 Oct 13. 2024

비아나 두 카스텔루

Viana do castelo

  아침부터 비가 약하게 내렸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대략 25km 정도 예상 돼서 아침 일찍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우린 짐을 다 챙긴 뒤, 어제 사두었던 포르투갈 컵라면을 들고 1층 주방으로 갔다. 주방엔 간단한 차 종류와 빵이 있었고, 그 옆엔 '기부'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모금함이 있었다. 우리도 모금함에 동전을 몇 개 넣고 빵을 가져왔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국 컵라면처럼 얼큰하진 않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 뜨끈한 국물은 정말 최고였다.    

  

비가 아주 약하게 흩날려서 우비는 입지 않고 출발했다. 중간에 빗줄기가 조금 굵어진다 싶을 때마다 준비해 간 작은 우산을 잠깐씩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비가 더 올까 봐 날씨만 걱정했지 오늘 걷게 될 코스가 어떤 길인지는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다. 첫날은 도시길, 둘째 날은 해변길, 셋째 날은 찻길과 돌길이었는데, 오늘이 가장 힘든 오르막길과 산길이라는 걸 우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초반엔 자연의 냄새도 맡고, 즐겁게 대화도 나누며 걸었다. 하지만, 오르막이 지속되는 구간이 많아지면서 유림이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몸이 힘드니 짜증이 나는지 내게 건네는 말이 곱게 나오질 않았다.   

   

“엄마~ 도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해? 안 쉬어?”     


“카페가 나오면 거기서 쉬자. 간식도 좀 먹고.”     


“카페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데? 알고 가는 거 맞아?”

    

나는 짜증 섞인 말이 튀어나가려는 입을 꾹 닫고 속도를 올려 앞서 걸었다. 짜증을 내도 힘들고, 안 내도 힘들다. 사서 하는 고생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여기서 마음까지 상해버린다면 정말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돼서, 걷는 두 발에 더 힘을 주었다. 유림이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조용히 따라왔다.

다행히 오래 걷지 않아서 카페가 나왔고, 우린 당충전도 하면서 좀 쉴 수 있었다. 또 한참 걷다가 나오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다. 또 걷다가 다리가 너무 아프면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물도 마셨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유림이가 나를 앞서서 걷고 있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아이가 묵묵히 앞서 걷는 모습에 어떤 뿌듯함과 뭉클함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딸아, 많이 컸구나. 키만 자란 게 아니라 마음도 많이 자랐구나.’     


힘든 길을 묵묵히 앞서 걷는 유림이.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힘들다고 너무 쉬면서 걸었나 보다. 짐 풀고 둘 다 씻고 하다 보니 벌써 일곱 시가 다 되었다. 저녁식사만 겨우 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또 바빠졌다. 내일은 포르투갈의 국경도시인 '카민하'까지 걸을 생각이었고, 그러면 30km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오늘도 이렇게 힘들고 오래 걸려서 도착했는데,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하는 코스가 예상되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같은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들과는 서로 ‘부엔 까미노’라고 외쳐준다. 예전에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을 재밌게 봐서인지, 이 인사가 낯설지 않았다. 직역하면 '좋은 길' 정도의 뜻이지만, 순례길 위에서는 서로의 안녕과 완주 성공을 빌어주는 주문 같은 인사다.

현지 주민들은 마주칠 때마다 ‘봉디아’나 ‘올라’로 인사를 해준다. 참 친절한 포르투갈 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거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나타나 길을 알려준다. 포르투에서 파두 공연을 봤을 때부터 포르투갈 사람들이 뭔가 우리 민족과 비슷한 '한'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까미노 위에서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에게서는 우리와 비슷한 '정'이 느껴졌다.


잠깐 머물다 떠나기엔 너무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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