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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Jan 10. 2021

노동의 인간 : 감자 농사, 그리고 달고나커피

영화 《마션》

여기서 3년 치 식량을 재배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이 행성에서.

다행인 건, 내가 식물학자라는 거죠.
화성은 내 식물학적 능력을 두려워하게 될 거에요.

          

한국인의 달고나커피, 화성인의 감자 농사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로 집콕이 시작된 후, ‘한국인들은 가만히 있는 걸 참지 못한다’라는 말들이 SNS를 가득 메웠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인들은 갑작스러운 휴업과 폐업, 실직과 휴직, 재택근무로 인해 생긴 여유시간에도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에는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택알바나 블로그, 쿠팡 등을 활용한 제휴 마케팅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열풍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달고나 커피’다. 동량의 커피와 설탕, 물을 넣고 천 번을 저으면 연한 갈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우유나 물에 희석해먹는 달고나커피는 한동안 인터넷 상의 엄청난 열풍으로 존재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달고나커피, 혹은 만들다 실패한 달고나커피의 모습을 SNS에 공유했고, 유튜버들은 욕조 가득 달고나커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터넷 상에서의 달고나커피 열풍은 주요 카페 프랜차이즈들의 신메뉴로도 이어졌다.

    집에서 고립되어 달고나커피를 만들었던 한국인들처럼, 거대한 우주에 홀로 고립되어 감자를 키워내는 사람도 있다. 리들리 스코의 2016년 작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 혼자 남겨진 후, 얼마 남지 않은 식량들 중 감자를 발견하고 식물학자로써의 역량을 발휘해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시도한다. 물론 그에게는 남겨진 식량이 없었고, 척박한 땅인 화성에서 어떻게든 생존해나가야 했다. 그러던 중 식물학자였던 그는 감자 하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지식을 살려 감자 농사를 짓겠노라고 결심한다.

    사실, 그 감자 하나가 누군기에겐 절망의 징표였을지 모른다. 감자만이 남아있는 화성에서 언제 끝날지 확신할 수 없는 고립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절망적이다. 하지만 식물학자인 와트니의 눈에는 달랐다. 그에게 감자는 자신의 식량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무궁무진한 생멱력을 가진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감자를 재배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눈에는 희망이 가득 차 보일 정도다. 결국 그는 모든 생명이 불가능할 것 같은 곳에서 감자 농사를 시작하고 꽤나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다.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 있는 감자 하나가 그의 지식과 노동력을 만나 엄청난 생명력을 발휘해낸 것이다. 그리고 감자가 만들어낸 생명력은 화성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한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깨닫는 일상의 소중함

    하지만 와트니의 감자 농사는 결국 실패한다. 척박한 사막 속에서 기적과도 같았던 감자 농사는 화성의 모래폭풍에 의해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와트니는 좌절하지 않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고민과 노력들을 이어간다. 화성에 수년간 고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는 일상적인 노동을 위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조금이라도 가까워질지 모를 지구로의 복귀를 착실히 준비한다. 처음에는 와트니가 사망했다고 확신하며 장례식까지 치뤘던 본부요원들도 그의 생명력과 활기 넘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자신들의 위험을 감수하고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화성으로 떠난다. 화성에서 와트니와 만나기까지 엄청난 고난들이 마주하지만 마침내 와트니와 요원들은 성공적으로 지구로 복귀해 일상을 회복한다.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결국 우리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적 노동이다. 평소에는 별 볼 일 없이 귀찮게만 느껴졌던 일들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장기간의 집콕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코로나 블루와 마주하면서도 우리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약속도 이벤트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들이었다. 너무 우울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고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요리를 하며, 나갈 데가 없어 며칠씩이나 입고 있던 옷을 더는 입을 수 없어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순간들처럼, 너무도 일상적인 노동은 모든 특별함이 배제된 우리의 집콕 생활을 구성하는 가장 유의미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이런 이벤트들이 존재하기에 노동을 통해 우울감을 극복해내고 나름대로 즐거운 집콕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들을 더 윤택하고 정교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바쁜 노동 속 ‘잠을 자는 공간’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집의 공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집안에서의 인테리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편하고 안락하게 나의 공간을 가꿔가는 노력들을 통해 집 밖에서의 생활 속에 매몰되었던 집 안에서의 일상이 점점 더 회복되어 가고 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했던 일상적 노동이 어느새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이 되어 준다.

    《마션》의 지구에서는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에게 너무나도 일상적인 노동이었을 감자 농사가 화성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평소 식물학자인 그에게는 그저 평범한 존재였을 새싹도, 화성에서의 험난한 농사 과정에서 마주할 때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엄청난 감동을 선사하며, 지구에 돌아온 후 그가 어느 자갈밭에 힘겹게 돋아난 새싹을 마주할 때에도 상념에 잠기게 한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 또한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집을 어떻게 꾸며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은 와트니의 감자 농사를 떠오르게 한다. 코로나 시대의 우리들도 자신들의 집을 더욱 다층적으로 만들어가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집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V-Log의 형태로 전파되며 누군가에겐 새로운 의미가 된다. 게다가, 자신의 집을 숙박공간으로 빌려주는 ‘에어비앤비(AirBnB)’나 자신의 집에서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해 다른 이들에게 개방하는 국내 플랫폼 ‘남의집프로젝트’처럼 자신의 주거공간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서비스들도 점점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노동의 인간에게 자유의 공간을 허하라

    인간은 노동의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성을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로 설명하기도 했지만, 인간은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고 자신의 노동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인간은 노동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에도 자신이 스스로 노동을 찾아 그 공백을 메운다. 물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경우들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노동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굳이 몇 번만 저어서 녹여먹어도 되는 가루들에 몇 천 번씩 젓는 노동을 더해 더 맛있고 ‘힙하다’고 느끼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이러한 열풍은 한국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는 집콕 생활을 견디기 위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노동의 공백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잇다면 인간의 피에는 노동의 DNA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재택근무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특히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에 태만해지고 일의 능률이 떨어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노동의 인간은 어떻게든 노동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에 일탈을 하기도 하고 약간의 태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의 자신의 본분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집안에서의 더욱 효율적인 노동활동을 위해 집안 환경을 최적의 업무환경으로 바꿔놓으면서까지도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후 재택근무를 위해 방의 배치와 가구를 바꾸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노동의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그러니 모여서 일하는 것을 기약하기 어려워지는 시대에, 노동자에게 공간에 대한 약간의 자유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다.
무작정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영화 《마션》은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영화다.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후 화성 탐사에 돌입하지만 예상치 못한 모래폭풍을 마주한다. 이로 인해 임무가 중단되고 지구로의 복귀명령이 떨어지지만, 복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크 와트니는 홀로 살아남아 화성에 고립된다. 생존을 위한 물품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데다가, 본부에서도 지금 당장 그를 구조하는 작업에 돌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좌절하던 중, 마크 와트니는 비행선에 남겨져있던 감자를 발견하고 감자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다. 본부에서는 마크 와트니의 생존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좌절하던 중, 와트니가 생존한 채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부의 사람들은 그를 보며 희망을 가지고 와트니 구조 작전에 돌입한다.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성공적으로 지구에 복귀한 와트니는 지구에서의 생활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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