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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Jan 08. 2021

보건교사라는 존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Netflix, 《보건교사 안은영》

[안은영]
내가 보는 세상은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씨발.

  

보건교사 : 교사와 직원 사이의 중간자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틀어 ‘교직원’이라 부른다. ‘교직원’이라는 말에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원활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행정과 시설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모두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의 업무는 교사의 수업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학교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대부분 교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학교에는 수업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업무들이 존재하고, 이 업무들을 해결해주는 직원들 또한 교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사가 하나라도 빠지면 기계가 돌아갈 수 없듯, 교사와 직원이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할 때, 학교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와 직원 사이, 조금은 애매한 중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신분 상으로는 교사지만, 업무는 직원에 가까운 사람들, 대표적으로는 보건교사와 영양교사, 사서교사가 있다. 이들은 임용고시를 통과한 (혹은 기간제 임용 절차를 거친) 엄연한 교사이다. 이들은 교사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정규 수업 진행 등 교사들이 하는 모든 권한을 동일하게 갖는다. 심지어는 담임교사를 맡을 수도 있다. 이들의 업무 자체가 특정 학급에 치중될 수는 없는 부분이기에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담임의 업무를 분담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교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학교에 매일 등교하는 학생들조차도 자신들의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이 교사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런 보건교사의 시선을 통해 학교를 보여준다. 누구나 어느 한 시절을 겪었던 공간인 학교도 보건교사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조금은 낯설게 보인다. 그리고 정세랑 작가는 넓고 서늘한 보건실을 홀로 지키며 학교 구성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교사를 한 명의 ‘히어로’로 재탄생시켰다. 학교에서 쉽게 조명되지 않았던 보건교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를 느끼게 한다. 젤리와 옴, 각종 괴물과 사이비 집단에게 점령당한 학교의 학생들이 별 탈 없이(정확히는 ‘큰 탈 없이’가 맞겠지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보건교사 덕분이다. 평소에는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보건교사 안은영 말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영웅의 등장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위기 속의 목련고에는 그 답을 알고 있는 이들이 몇몇 존재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안은영 하나뿐이다. 답을 알고 있는 이들(안전한 행복 구성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키우며 이용하고 싶어할 뿐이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홍인표)는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모두 갖춘 문제 해결의 열쇠는 안은영의 손에 있다.

    이런 안은영의 모습은 마치 코로나 시대를 맞은 보건교사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교사와 직원들은 모두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 답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사람이 있다. 학교 내부의 유일한 의료인이자 다른 교직원은 전혀 모르는 의료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 바로 보건교사다.

    물론,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질병을 보건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만드는 방역수칙과 의료적 해결책을 학교 안에 적용하고 수행하는 것은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의 역할이다. 보건교사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의료적 조치를 통해 학교 안에서 코로나를 물리치고자 하는 교직원들의 의지를 실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교사와 직원 사이에 놓인 보건교사의 중간자적 위치는 빛을 발한다. 만약 보건교사가 일반 직원이었다면, 제한된 권한으로 인해 보건‘교사’로서의 방역업무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일반 교사가 보건 업무를 함께 맡고 있었다면, 변화된 수업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제대로 된 방역과 보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에는 보건교사 한 명씩 근무하고 있는데, 이러한 보건교사의 존재가 너무도 다행스럽다. 보건교사가 일부의 학교에만 근무했다면, 학교 간 혹은 지역 간 보건 격차는 극대화되었을 것이고, 온라인 개학이나 잠시나마 이루어졌던 부분적 오프라인 개학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쉽게 주목되지 않았던 보건교사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2020년이었다.

  

이제, 이 싸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보건교사가 아니더라도 영양교사와 사서교사, 최근에 배치되기 시작한 상담교사까지. 평소에는 그 역할이 주목받지 못하지만 위기 상황에는 엄청난 빛을 발하는 학교의 중간자적 존재들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교에 배치되어 있는 보건교사와 달리 영양교사와 사서교사, 상담교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영양교사가 아닌 ‘영양사’, 사서교사가 아닌 ‘사서’, 상담교사가 아닌 ‘상담사’만이 배치되어 있는 학교도 있고, 관련된 전문 지식이나 자격이 없는 일반 교사가 해당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러한 교사들은 보건교사와는 다르지 않냐고 말할지 모른다. 물론, 의료적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우선순위가 앞설 수는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그러했듯, 앞으로 우리에겐 어떤 위기 상황이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것이다. 엄청난 식량대란이나 농업대란 속에서 영양교사의 역량이 빛을 발할 수도, 어느 날 세상의 지식이 모두 뒤집어져 기존의 교과서가 아닌 도서관의 책들로 수업이 대체되어야 할 수도, 학생들이 집단적인 우울감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중간자적 위치에 놓인 각각의 교사들이 어떠한 영웅적 힘을 발휘할 지는 알 수 없다. 젤리와 ‘안전한 행복’으로부터 학교를 지켜낸 안은영과 코로나 속에서 학생들을 지켜낸 한국의 보건교사들처럼 말이다.

    보건교사라는 중간자적 존재가 이뤄낸 일들을 뒤로 하고, 이제 점점 길어지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보건교사라는 영웅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위기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웅이 시작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지속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선의 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 총알받이가 되었다가, 다른 직종의 노동조합에는 적이 되었다가, 교육청이라는 교육부라는 톱니바퀴의 톱니가 되기를 반복하면서 1학기 내내 거의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했”[1]으며, 의료진들은 부족한 의료상황을 최대한으로 발휘해내먀 K-방역이라 불리는 엄청난 성과를 이뤄냄과 동시에 과로에 시달렸다. 이것은 비단 학교 현장과 의료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된 시스템의 부족과 부재를 개인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극복하며 지금껏 버텨왔지만 앞으로 개인에게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연히 젤리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친구인 김강선으로부터 무지개칼이라는 무기를 선물받은 안은영이 목련고의 위기를 어떻게든 이겨냈지만, 결국 안은영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고, 젤리 제거에 모든 힘을 쏟아야하는 안은영은 모든 힘을 소진한 채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간다. 이제 우리가 함께 무지개칼을 쥐고 젤리들을 물리쳐야 한다. ‘집 안에 있는 당신이 방역 영웅’이라는 서울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공익광고 카피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개인이 지켜야 할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무지개칼을 함께 쥐고 있는 것이다. 함께 무지개칼을 쥐고 나아간다면 코로나라는 젤리와 싸우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안은영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김강선]
도구를 쓰라고 내 말은.
다치지 말고, 유쾌하게 가란 말이야.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 살아.

[안은영]
(...) 이걸로 나 혼자 어떻게 싸워.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세상에 존재하는 욕망들을 젤리로 보는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Netflix에서 이경미 감독의 연출과 정세랑 작가의 시나리오로 시리즈가 제작되었으며, 학교 지하실에 존재하는 젤리들이 만들어내는 목련고의 수상한 사건들을 보건교사 안은영과 신비한 기운을 가진 한문교사 홍인표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극중 안은영은 무지개칼과 비비탄총으로 젤리들을 무찌르며 이런 젤리들을 이용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는 ‘안전한 행복’의 정체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1] 김현수,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들』 (덴스토리, 2020).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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