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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Jan 06. 2021

인류가 사라진 지구, 그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

타타냐 루바쇼바, 안드르지흐 야니체크, 『ROBOT』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을 탐험하고
지도에 그려넣는 일이다.

무엇보다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우리 종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장마는 지구에게 휴식과도 같다. 태양과 인간이 쏟아내는 열에너지는 지구의 표면을 뜨겁게 하고, 온도가 계속해서 상승한 지구는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을 때 대류현상을 통해 장마를 내리게 해 뜨거운 열기를 식힌다. 더 아픈 이들에게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하듯이, 지구 또한 더 뜨거울수록 더 많은 장마를 필요로 한다. 장마가 점점 길고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은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지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편리해진 인간의 삶과 맞바꾼 환경파괴가 온도 상승을 더 빠르게 하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기술의 혜택을 점점 더 많이 누릴수록, 지구는 그 편리함으로 인한 뜨거움을 감내하며 더 길고 강력해진 장마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장마가 더욱 강력해질수록, 지구 반대편의 어느 곳에서는 그만큼 강력해진 가뭄으로 고통을 받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과 수증기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물이 쏟아진다면 다른 곳에서는 물이 그만큼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지구는 장마를 통해 위치에 따라 다른 열기를 식혀가며 전체적인 지구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환경파괴로 점점 병들어가는 지구는 균형을 맞추기는커녕, 장마를 쏟아내며 너무도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기술이 만들어낸 열기로 인해 어딘가는 장마와 홍수로, 어딘가는 가뭄과 물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우리의 삶이 정말 편리해지기만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2020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속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시대를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여름에 쏟아진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기후로 인한 지구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류가 저질러 온 환경파괴의 영향을 전염병과 이상기후라는 형태로 돌려받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류의 역사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지구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인간이라 말한다. 인류는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계속해서 발달해왔고, 지구가 스스로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인류가 사라진 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로봇들의 눈으로 바라본, 낯설지만 익숙한 세계

    『ROBOT』은 인류가 사라진 지구를 탐험하는 두 로봇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로봇들의 세계에 살고 있는 과학자 로봇 윌리엄은 로봇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성벽 밖의 세상을 탐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윌리엄은 또 다른 과학자 로봇인 메이웨더와 함께 모험을 떠나고, 그곳에서 다양한 표본들을 수집한다. 마치 수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벗어나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탐사했던 것처럼.

    윌리엄과 메이웨더는 로봇 세계의 성벽을 벗어나 자신들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탐구한다. 그러던 중 절벽의 갈라진 틈새로 두 로봇이 추락하게 되고 계획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로봇 종족의 기원과 탄생을 마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떠난 모험은 결국 그들에게 더 많은 질문만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두 로봇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지만 낯선 공간으로 묘사된다. 수많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원시림과 숲을 가로지는 큰 강, 인류가 자신들의 삶을 위해 파괴했던 자연은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시간 동안 찬란한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상징하던 연구소와 과학관은 자연들이 집어삼킨 폐허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미래의 모습은 지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인류가 지구를 독점적으로 점령하고 있지만, 과연 이러한 독점은 영원할 것인가? 코로나와 이상기후 등의 상황으로 인해 지구가 인류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순간, 인류의 삶의 터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지 생각하게 된다.

    비록 목표했던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두 로봇의 모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 전 세계가 속도 경쟁을 잠시 멈추고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성찰하며 고민하고 있는 팬데믹의 시대. 누군가는 인류와 지구의 끝에 절망만이 가득할 것이라 예측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끝이 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를 찾아오지 않은 결말을 만드는 것은 인류 스스로의 몫이다. 정체와 멈춤의 시기로 기록될 2020년이 어쩌면 우리에겐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지 모른다. 삶의 터전이 사라진 지구에서 자신들의 기원을 찾아낸 윌리엄과 메이웨더처럼.

    특히, 우리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주목해야 한다. 인류의 터전에서 자신들의 시초를 찾아낸 윌리엄과 메이웨더의 힘찬 귀환의 발걸음 밑으로 땅 속에 묻힌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보인다. 핵 전쟁에 사용되었던 비행기와 각종 건축물 그 밖에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로 가득한 세계다.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세상은 인류가 남긴 흔적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인류가 외면하고 있던 어두운 오염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것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저지르는 환경오염의 문제는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은 후대가 정의할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이 기억은 우리가 남긴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여름장마, 지구의 눈물

    누군가는 이런 환경문제를 이야기할 때 호들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아직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가 병들고 있음에도 우리가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지구가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구의 이런 고통과 노력을 생각하지 않고, 점점 길어지는 장마와 같이 지구가 보내는 이상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간신히 버티고 있던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마주하고 인류는 처음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속도 경쟁을 잠시 멈추고 인간 사회의 많은 부분들은 제자리에 멈춰섰다. 전염병이 가져다 준 ‘잠시 멈춤’의 시대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는 여전히 병든 자신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잠시 멈추라’는 메시지가 되었던 것처럼, 이렇게도 심각한 장마는 지구가 쉬어가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구의 휴식이었던 장마가 지금은 지구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넘어 엄청난 과로로 병들어 가는 지구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눈물. 지구가 점점 더 길고도 강력한 장마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모두가 지구에 주는 부담을 조금씩은 줄여가야 한다.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면, 코로나와 집중호우라는 재난 속에서 인류가 이전의 행동들을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껏 무심히 지구에 저질렀던 행동들이 어떤 피해로 다시 돌아오는지를 절감하고 있고,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듯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탄소배출 저감과 관련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고, 기업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합류해 ‘친환경’ 경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정책결정권자와 기업인들이 진정으로 환경보호라는 가치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환경보호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고 있고 사람들이 여기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라고 본다.

    이제 환경문제를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 등의 먼 미래의 문제로 인식할 수만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자 환경 문제로 피해를 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마스크를 쓰는 것만 보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모든 외출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 자체는 낯선 상황이었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미세먼지의 수치가 점점 높아져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마음놓고 외출할 수 있는 날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였다. 게다가, 코로나라는 상황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 사이, 택배 및 배달물량의 급증이나 마스크 폐기물 발생, 음식점 내 일회용품 사용 등의 문제와 맞물려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최후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미국 핵과학자회(BAS)가 발표하는 ‘지구 시계가’ 2021년 기준으로, 지구 종말 100초 전을 가리키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 100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글렀다’며 한탄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과장’이라며 외면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100초라는 마지막 기회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우리의 삶을 이어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이 100초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우리가 지금 해야하는 것은 100초를 비관하며 낙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100초를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지구 시간을 되돌리거나 그 속도를 늦추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하는 일이다. 환경보호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했던 말조차 이제는 천하태평한 말이 되어버렸다.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홍세화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삶의 터전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속죄의 시간과도 같다. 지금까지 지구에 저지른 문제들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미 글렀다고 낙담할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처음’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고, 처음에는 언제나 실수가 따르는 법이다. 똑같은 상황이 생겨났을 때 이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으면 된다.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지구가 인류의 생존을 허락한 것이다. 지구로부터 코로나와 미세먼지라는 거대한 단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이 단죄에 대한 속죄와 반성을 통해 인류가 지구에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인정받는 일이다. 조금은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는 탐험을 시작할 때
우리 종족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이제 나는 그 대부분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질문들은 아직 풀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질문에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체코의 예술가 타타냐 루바쇼바와 안드르지흐 야니체크의 그래픽 노블 『ROBOT』은 인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먼 미래의 탐험가 로봇 윌리엄과 메리웨더가 인간이 살았다고 알려진 지구의 터전을 탐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된, 투박한 선과 세 개의 색깔(노랑, 파랑, 초록)로 이루어진 그림들이 아름다운 그림들은 책장을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인류가 사라진 이후의 지구라는 어쩌면 어둡고 절망적일 수도 있었던 아포칼립스적 미래의 모습을 아름답게 풀어내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지금 우리의 행동이 지구에 어떻게 기록된 채 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 홍세화, 2020, 「갈 길이 멀더라도」, 『미안함에 대하여』, 한겨레출판. p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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