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내가 우리지

[오늘도, 사람!]

by 별체



“내가 분명 말했었지. 우리가 처음 싸우게 된다면 상이 때문일 거라고.”



스크린골프장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리는 만난 지 세 달을 갓 넘긴 내 애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만난 기간보다는 좀 더 오래된 연인 같았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근무시간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매일 얼굴을 보기에 일반적인 세 달차 연인보다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건 서로가 싫어하는 게 뭔지도 잘 안단 뜻이다.



연인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잔뜩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과거의 연애로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우리는 서로가 싫어할 만한 일들은 애초에 하지 않으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래된 연인으로 자주 오해받았고, 그 흔한 다툼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잖아.”

“우리라고 했어? 너랑 상이가 왜 우리야? 너랑 내가 우리 아냐?”



도리는 대개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을 안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근래에 매장 손님들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라는 건, 나와 함께 일하는 상이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농담이었는데, 이 말을 여러 사람이 반복하자 도리는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거기에 내 말실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과 다름없었다.



“미안.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었어.”

“그런 걸 조심하라는 거야. 사람들이 오해하게 하지 마.”

“사람들이 오해한 게 아니라, 그냥 농담이잖아. 여직원이 나 하나뿐이니까. 손님들 짓궂은 거 뻔히 알면서 그래.”



“너랑 근무시간 겹치는 사람이 상이만 있는 게 아니잖아. 수랑 우도 있는데 왜 유독 사람들이 상이랑 너만 엮을까?”

“수랑 우는 일한지 얼마 안됐잖아. 손님들이 상이한테는 오빠랑 내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더라. 그냥 아무하고나 막 엮는 건데 너무 신경 쓰지 마.”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사장님 밑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직원들끼리 끈끈한 동료애가 생긴다.



상이는 나와 근무시간이 가장 많이 겹치는 직원이자, 반년을 함께 일한 직원이었다. 당연히 일한지 한 달도 안 된 다른 두 사람과는 친밀함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하면서 여유로울 때는 각자의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측, 일명 카더라로 돌아왔다.



“네가 제대로 행동했으면 그런 말이 왜 나와?”

“뭐?”



도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뱉은 생각 없는 말의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도리가 이번만큼은 낯설게 느껴졌

다.



혹시나 싶어 내 행동을 돌이켜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이에게 오해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도리에게 푹 빠져 있어서 그럴 정신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싸늘해진 말투로 되묻자 도리는 아차 싶은 듯 했다.



“미안해. 지금 이 말은 내가 실수했어. 네가 잘못했다는 거 아냐. 그냥 내 여친이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일 뿐이라는 거 알아, 아는데! 그래도 자꾸 다른 사람이랑 네가 같이 언급되는 게 싫어.”


만약 남직원이 도리 한 명 뿐이고, 다 여직원이었으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내게 도리와 다른 여자를 묶어 자꾸 농담을 던진다면 나 역시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손님들이 막 던지는 농담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선책으로는 상이와 대화를 아예 안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것 정도가 떠올랐지만 둘 다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어떤 약속으로 도리를 안심시켜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도리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사귀는 거 매장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될까?”



나와 도리는 사귀는 것을 일터에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나 때문이었다. 그저 아르바이트라도 주6일을 매일 8시간씩 있는 곳이었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내릴까봐 조심스러운 건 당연했다.



혹시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원인을 내 연애에서 찾을까봐 두려웠다. 연애하면 다야? 남친 믿고 그러는 거야? 같은 말들로 나뿐만 아니라 도리까지 피해를 볼 것 같았기에 알리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말 안 해도 다 아는 게 사내연애라는데.”

“그래도 직접 알리는 게 낫지. 손님들이 엄한 사람이랑 묶어 장난칠 때도 우리가 애인 사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처음 연인이 됐을 때부터 매장에 알리길 원했던 도리는 이참에 내가 생각을 바꾸길 바라는 눈치였다.



공개연애의 두려움과 불편함은 내게만 있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자 순식간에 외로워졌다. 분명 함께인데도 아득히 혼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덮쳐왔지만 내 주장만 고집하기엔 나는 도리가 무척 좋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말하면 네가 안심이 될까?”

“응. 상이한테도 확실히 말했으면 좋겠어. 혹시 모르니까.”



우리의 첫 다툼은 연애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고집과, 애정을 질투심으로 드러낸 도리가 만든 너무나 유치하고도 뻔한 다툼이었다. 그건 내가 도리와의 연애에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다툼이기도 했다. 도리는 어른스러운 사람이라 모든 일에 쿨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리는 한 번도 내게 스스로가 어른스럽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마음대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을 뿐, 어쩌면 강제로 그를 ‘어른스럽게’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어른스러운 게 뭘까. 질투도 안하고, 모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어른인걸까.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리고 다시는 상이랑 너를 우리라고 하지 마. 너랑 내가 우리지.”



어른스러워서 좋았던 도리가 이제는 어른스럽지 않아서 더 좋아졌다. 당분간은 계속 그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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