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너

[오늘도, 사람!]

by 별체



오랜만이야. 너와 헤어진 지 벌써 십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가끔씩, 아니 사실은 꽤 자주, 너를 떠올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그런 날, 누구나 한 번쯤은 있잖아. 내게는 그런 날이 많거든. 그런 생각으로 하루 전체가 엉망이 될 때마다 나는 자꾸 과거를 돌아봐. 마치 과거로 돌아가면 공허한 현재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 보면 그 끝에 항상 네가 있더라. 참 이상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가 내게 후회로 남진 않았는데, 왜 내가 약해지고 괴로운 순간마다 네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주로 바닷가에 서서 환하게 웃던 네가 떠오르곤 해. 그거 아니. 너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난 시간이 훨씬 더 길었는데도, 함께 바다를 보러 제일 많이 갔던 사람은 여전히 너란 거.


생각해보니 우리 한 달에 열 번 간 적도 있더라. 바다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우리 만나는 동안의 모든 여행지가 전부 바다였어.


한번은 왜 그렇게 바다를 좋아하냐고 물었었지. 그때는 나도 왜인지 몰라 대답을 못했는데, 언젠가 혼자 간 바다에서 그 답을 찾았어. 좋아서 간 게 아니라 도망치고 싶을 때 가는 곳이란 걸.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꼭 상처로 남기는 스스로가 싫어질 때마다 찾았던 거야. 바다를 보고나면 그제야 겨우 흘러가는 것들을 전부 담지 않아도, 그저 놔두기만 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채곤 했어.


부모님도 없이 널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도 기억해. 그 때 너의 일방적인 잠수로 헤어진 지 한 달이나 지난 상황이었는데도, 날 찾아와 함께 장례식장에 있어 달라고 말했지.


고향이 바다 옆에 있는 도시였던 네 덕분에 버스는 오고가는 길 내내 바다 옆길을 달리더라.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던 네가 생각나.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너에게 나는 도리어 화를 냈지. 너한테 난 대체 뭐냐고, 내가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 약한 모습도 못 보여주는 거냐고, 울 거면 제대로 울라고 소리쳤지. 그런 내게 너는 발인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만 하더라. 그건 너를 사랑한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말이야.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왜 네가 그렇게 힘든 상황에 화를 내냐고 따졌어야지, 바보 같이.


우리가 정말 끝내던 날도 바닷가 근처 카페였다. 수차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 닳고 닳아버린 이 관계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서로 이별을 막연히 미루기만 했었잖아.


너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나 없는 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답도 없는 이유 때문에 말이야.


결국 이별의 말조차 익숙해져서 서로에게 상처도 되지 않던 순간에 나는 네게 이별을 꺼냈지. 그 때 헤어지면 죽을 거라던 네 모습이 선명해. 이 년을 만났는데도 너에게서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많이 놀랐거든.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진짜 죽는 사람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나는 혹시 정말 네가 잘못될까봐 바로 이별을 철회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너는 많이 위태로워 보였어. 눈물도 없이 그저 차분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말이야.


분명 너의 사랑도 식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왜인지 이 이별이 너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결국 넌 헤어지면 외로울 것 같아서 그랬다는, 나조차도 너무나 이해가 되는 이유를 얘기하며 이별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었지.


사실 가끔 안부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나 삼켰는지 몰라. 일을 구했다더라, 다른 여자랑 일 년 째 만나고 있다더라 같은, 간간히 들려오던 소식조차 사라질 때까지, 더 이상 내게 아무도 너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을 때까지 꽤 자주 그랬어. 그런데 한 번쯤은 삼키지 말고 그냥 내뱉어볼 걸 그랬어. 네가 정말 힘든 순간에 찾는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니란 걸 알았어도 말이야.


나는 이제 그때만큼 바다를 자주 가지도 않아. 일 년에 한 번도 안 간 적도 있었어. 바다와 함께 네가 흘려보내면 안 되는 기억으로 남았거든. 누가 바다라는 말만 꺼내도 바로 너부터 떠오르는 걸 보면 아마 평생 그럴 것 같아.


사실, 너를 위한 글을 적어도 될지 많이 고민했어. 나는 스쳐간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잖아. 그런데 나는 내가 너를 잊고 싶은 건지, 오래도록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은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도 역시 글로 적는 걸 선택했어. 말해주고 싶었거든. 너와 함께 한 지난날의 의미를.


너는 아무것도 흘려보내지 못한 채 모두 끌어안고는 어쩔 줄 모르는 불안정한 내게 유일한 안정이었어. 자꾸 너를 데리고 바다에 갔던 건, 네가 억지로 끌어안지 않아도 되는, 그저 마음 편히 끌어안을 수 있던 단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힘들 때마다 네가 생각나는 건 그 안정을 떠올리면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냈기 때문인 것 같아.


고마운 제이야, 네게 약속할게.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만나왔던 수많은 장, 전, 정, 주, 지, 진씨들을 다 제치고 내가 제이라고 부를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고. 내 모든 글의 제이는 전부 너일 거라고, 그렇게 약속할게.


있지, 이젠 괜찮니. 꼭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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