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진과 나는 야간자율학습실에서 공부를 하는 대신, 학교 운동장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별의아이들 어때?”
“뭐가?”
“우리 팀 이름! 너 설마 생각 안했어? 하고 싶은 이름 생각해 오랬잖아!”
같은 반이었던 진과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단숨에 친해졌다. 노래를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우리는 일주일에 2-3번씩 노래방에 들러 신나게 소리 지르곤 했다. 너무 자주 가다 보니 매번 비슷한 노래들만 부르는데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노래방을 같이 다니며 우정을 쌓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노래에 대한 태도였다. 이 모든 게 취미였던 나와는 달리 진은 노래를 자신의 업으로 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진은 내게 듀오로 가수 준비를 하자며 조르기 시작했다. 활동할 그룹 이름을 생각해오라는 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게 이제야 떠올랐다.
“진짜 하게?”
“응. 난 가수가 될 거야.”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나 혼자서는 못한단 말이야. 같이 해.”
“나 가수한다 하면 우리 엄마아빠 뒤집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어릴 때 잠시 성악을 배운 적도 있기에, 가수의 길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가수가 될 만한 뛰어난 재능도 없었고,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길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지금 부모님 몰래 노래방에 다니는 것도 가슴 졸이고 있는 터라, 진의 제안이 썩 달갑지 않았다.
“하긴. 너희 부모님이 좀 엄하시긴 하지.”
“꼭 부모님 아니더라도, 나도 그냥 공부할거야. 가수로 먹고 살 자신도 없고, 그냥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노래에 관해서는 한 번도 의견이 다른 적이 없던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진은 다소 놀란 듯 했다. 나 역시도 그녀만큼이나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진이 이렇게 진지하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말로 가수가 되겠다고 한두 번 말한 적은 있었지만, 마냥 장난으로 여겼다. 엄밀히 말하면 진은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본인 역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노래 못하잖아. 너 없이 혼자서는 죽어도 가수가 될 수 없어.”
“노래를 못하는 것까진 아닌데...... 뭐, 어쨌든. 가수는 노래 부르는 게 일인데 노래를 무지무지무지무지 잘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같이 하고 말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왜 가수가 되고 싶은데?”
내 질문에 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가수가 되고 싶은 이유를 지금부터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열심히 생각하던 진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유명해지고 싶어. 많은 사람들 앞에 서고 싶고.”
진은 정확히 가수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스타가 되고 싶은 듯 했다. 유명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가 꼭 노래를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개그우먼 어때? 개그우먼도 유명해질 수 있어.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도 하고. 너 말을 잘하잖아. MC 해도 잘 어울리겠다.”
“죽을래?”
진은 자신에게 개그우먼을 권유하는 나를 죽일 듯이 째려봤고, 나는 그런 진을 달래기 위해 교복 주머니 속에서 간식을 꺼냈다. 그녀에게 왕꿈틀이 젤리를 건네자 그제야 눈빛이 너그러워졌다.
“암튼, 너 무조건 같이 하는 거다. 여름방학 때 잠깐 준비라도 해보자. 내일 방학 계획표 짜서 가져올게.”
진은 젤리를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그녀의 단순한 성격과 오늘 했던 대답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굳이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가수가 되겠다는 진의 열정은 빠른 시일 내에 스스로 사그라들 것이 뻔했다.
“근데 별의아이들 뭐야......”
“왜? 괜찮지 않아?”
“응. 괜찮지 않아.”
“아, 왜! 청순한 느낌 좋잖아.”
노래방에서 힙합 가수들의 랩을 즐겨 부르고, 남자 가수들의 노래만 부르는 진이 원하는 이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청순이었다. 그 괴리감에 나는 몸서리쳤지만, 진은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몇 살인데 아이들을 붙여. 촌스럽고 하나도 안 청순해 보여. 다른 걸로 하자. 좀 있어보이게 영어로 찾아보는 게 어때?”
혹시 내가 안 하겠다고 말을 바꿀까봐 겁이 난 진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청순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번역기에 돌려 ‘이노센스(innocence)’라는 팀명을 가지고 왔다.
나는 몹시 어이가 없어 그녀를 쳐다봤지만,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공책을 한 권 내밀었다. 공책 표지에는 까만색 유성매직으로 ‘이노센스 여름방학 프로젝트’라고 적혀 있었다. 공책 표지를 보는 순간, 나는 진의 제안에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걸 오래도록 후회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