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두뇌는 복잡한 걸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이렇게 오늘 글의 첫 문장에서 ‘두뇌’라는 단어만 보고도 벌써 읽기 꺼려질 만큼.
그래서 모든 사람은 휴리스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휴리스틱은 매번 피곤하게 하나하나 생각하는 대신, 기존의 경험을 떠올리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일명 어림짐작의 기술이다.
이렇게 말하면 휴리스틱이 나쁜 것 같아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실제로 휴리스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말을 무엇을 신을지, 어떤 경로로 출근을 할지,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 등등 하루 동안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든 일에 전부 일일이 생각하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휴리스틱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휴리스틱을 잘못된 방향으로 쓸 때 생긴다.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나야말로 사람을 볼 때 그 누구보다 휴리스틱 범벅 덩어리일 것이다.
각종 심리학 책, MBTI, 혹은 혈액형과 별자리, 사주 등의 유사과학으로 얻은 지식은 물론이고, 외모, 말투, 문체, 행동반경, 과거의 경험 등으로 모든 감각이 동원되어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남을 이해하고 싶어서 배운 것들이 오히려 남을 미리 오해하는데 쓰인다고 느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단순한 쌍욕보다 오히려 어림짐작하는 말들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어림짐작으로 판단을 끝냈어도, 계속 그 판단을 의심하며 직접 상대와 부딪히려고 애쓴다. 그리고 미리 어림짐작한 말은 정말 친한 단짝 친구가 아닌 이상 거의 꺼내지 않는다.
글을 쓸 때도 주의를 많이 기울인다. 내 이야기가 아닌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특히 날카로워진다. 타인을 명료한 단어로 설명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하나의 작은 상황을 묘사하는 데 신경을 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주 작은 단서만 던지려 하고, 가끔은 좋은 점만 드러나게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방적인 내 시선 때문에 누군가 나쁜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상처가 될 만한 글을 쓰는 걸 최대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지금의 나와 깊이 관련되어 있는 사람에 대한 글을 보낸 적이 없다. 안 썼고, 앞으로도 안 쓴다고 다짐해야 내가 무사할 것 같다.
그러다보면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처음 기획한 의도와는 다르게 밋밋한 글이 나올 때도 있다. (물론 이건 실력 부족도 한 몫 하겠지만)
시간의 압박에 쫓겨 다시 쓰지도 못하고 그냥 발송할 때마다 내가 왜 하필 에세이를 쓴다고 해서 이 고생인가 싶어 이불을 뻥뻥 찬다. 차라리 마음 편히 소설 혹은 지식 전달용 책이나 쓸 걸.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내 글은 에세이일 때 가장 빛이 나니, 그저 쓰고 또 쓴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늘 같은 글은 에세이 아니면 쓰기도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남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부담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판단하는 몇몇 휴리스틱에 대해 써볼까 한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의 90프로는 전부 이 말을 한다. ‘하얘서 좋겠다.’ 일반적인 동양인에 비해 하얀 것도 맞고, 살면서 연예인 이외에 나보다 하얀 사람을 본 적이 많진 않으니, 내 피부가 흰 편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게 좋았는지를 물으면 ‘글쎄’라고 대답한다.
하얀 피부 덕에 어릴 때부터 눈에 띄는 주근깨를 갖고 살았고, 점 하나만 생겨도 모두가 알아봤다. 일찍부터 선크림을 달고 살았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얼굴에 신경 많이 쓰는 사춘기 때 내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일 거울 보며 울상이었다.
하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뚱뚱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항상 실제 내 체중보다 나를 더 무겁게 생각한다.
한번은 체중과 체지방량, 근육량이 비슷한 친구와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나란히 섰는데 내가 1.2배나 뚱뚱해 보였다.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친구는 물론, 주변의 계란 까먹는 아줌마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내가 더 뚱뚱해 보인다고 했다. 정말 뼈만 남을 정도로 말라야, 겨우 날씬해 보이는 수준이었다.
아프냐는 오해도 자주 받는다. 그냥 하얀 건데, 하얗게 질렸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피부가 하얀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고충을 겪으며 자라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하얀 피부를 부러워 하지만, 뭐든 적당한 게 낫지 않나 싶다. 나의 경우는 나이가 들고 살짝 누리끼리해지면서 피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해봤자 여전히 친구들은 누리끼리가 뭔지 모르냐며 재수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휴리스틱으로는 ‘머리숱 많아서 좋겠다.’ 사실, 털 관련해서는 모두가 내게 축복받았다고 말한다. 내 몸의 모든 털은 머리털에 몰려 있다.
살면서 다리털 한 번 밀어본 적 없고, 팔이나 겨드랑이에도 잘 안 난다. 심지어 눈썹도 별로 없어서 눈썹문신을 했다. 진짜 말 그대로 모든 털이 머리에만 일방적으로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숱이 많아 항상 미용실에서 숱 추가 비용을 받거나, 헤어 디자이너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불편한 마음으로 머리를 해야 했다. 안 그래도 소심한 편인데, 미용실만 가면 그렇게 주눅이 들었다.
머리를 풀면 바야바처럼 붕 떠있기 때문에, 거의 머리를 묶고 지낸다. 풀고 싶을 땐 주로 반묶음을 한다. 사실, 반묶음도 아니다. 삼분의 이묶음이 더 맞는 말 같다.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검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데, 나는 숱이 더 많아 보이는 검은 머리를 피해야 했다. 흰머리가 자라본적도 없는데 꾸준히 염색을 해야 한다.
단발도 안 된다. 무조건 초코송이가 된다. 꾸불꾸불 파마를 한 적도 손에 꼽는다. 주로 매직으로 머리를 눌러줘야 그나마 삼분의 이묶음이라도 하고 다닐 수 있다.
나이 들면서 머리가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5년째 다니는 미용실 쌤에게 물어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여전히 자신이 담당하는 손님 중 머리숱 많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고 했다.
나는 30년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나한테 잘 어울리는 머리가 뭔지를 모르겠다. 머리숱도 그냥 적당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 말도 꺼낼 때마다 항상 욕을 먹는다.
‘순해 보인다. 착해 보인다.’ 하얗고, 쌍커풀 없는데 눈 크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듣는 것 같다. 이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내가 쓰는 글만 봐도 내가 그렇게 순하고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 누구나 안다. 뭔가에 대해 집요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둥글둥글할 수가 없다. 오히려 모난 쪽에 가깝다. 이 글을 받아볼 내 친구들이 어이없어하며 코웃음 칠 상상을 하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래, 사실 이건 다 배부른 소리다. 하얗고, 머리숱 많고, 순해 보이는 것. 이런 거라도 없으면 나는 또 불평을 했을 것이다. 선입견이라도 어쨌든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려고 해주는 것이 무척 고맙다.
오늘 이렇게 배부른 소리 대잔치를 벌여 놓았으니, 왠지 다음 주는 다시 용기를 내서 겸손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휴리스틱이 주는 두려움을 조금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