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단편소설입니다.
* 글의 재미와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에 예외를 둔 부분이 있습니다.
● REC (강서인)
주아영 씨가 그런 말을 했다니 유감입니다. 시어머니요? 누가 주아영 씨 시어머니였다는 건가요? 그런 말은 삼가주시죠. 우리 하진이는 법적으로 결혼한 사실이 없고 당연히 주아영 씨도 제 며느리였던 적 없습니다.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그전에 녹음기부터 꺼내서 이리 주시겠어요?
서울의 정중앙, 종로에 위치한 대형로펌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하진의 어머니, 강서인. 그녀는 50대 중반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뛰어난 미모의 여자였다.
거기에 깔끔한 단발과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앙다문 입술, 약간의 구김도 없는 회색 투피스 정장은 하나 같이 그녀가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챙겨 온 녹음기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확실히 하는 게 좋겠죠. 오늘의 대화는 가급적 머리로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메모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단 뜻이에요.”
강서인은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내 녹음기를 건넸다. 그다음은 옆에 둔 내 가방과 겉옷을 보며 말했다.
“가방과 겉옷, 그리고 핸드폰도 저희 비서한테 맡겨주시겠어요? 사전에 요청드렸던 신분증도 함께요. 불쾌하실 수 있겠지만 그만큼 내게도 무리한 요구를 하셨으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좋네요.”
강서인이 이렇게 나올 거란 것은 이미 이하진에게 전해 들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비서에게 내 물건들을 모두 넘겼다. 비서가 내 물건을 챙겨 빠르게 밖으로 나갔고, 그녀의 걸음소리가 멀어져 아예 안 들릴 때쯤 강서인이 입을 열었다.
“하진이가 집을 나간 지 1년이 넘었어요. 연락 한 번 없다가 갑자기 인터뷰를 부탁했죠. 보시다시피 저는 바쁜 사람이라, 서면으로 질문지를 보내주시면 답변을 적어 보내드린다고 했는데도 굳이 직접 인터뷰를 원하셨다고요.”
“서면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서면에 적힌 내용만 알아도 충분할 거란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네요.”
그녀는 고요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진이의 부탁은 뭐든 들어주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네. 그래서 이 자리를 만들었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부탁이라.”
“제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성실히 대답해 주실 거라고도 하더군요.”
강서인은 내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좋아요. 한 가지 확실히 해두죠. 당신이 쓴다는 책, 딱 한 권만 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진이가 개인 소장할 용도로 말이죠. 사실 저는 한 권이라도 기록이 남는다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만, 하진이의 부탁이니까 인터뷰를 하기로 한 겁니다. 소설을 쓰신다고요. 아무리 소설이라도 나나 하진이의 명예에 문제가 되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긴다면, 바로 법적 절차를 밟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30분 안에 끝내시죠.”
● OFF THE RECORD (강서인)
난 이혼 전문 변호사입니다. 자기 잘못만 쏙 빼놓고 말하는 사람들, 말만 앞서는 부류들을 지긋지긋하게 보는 게 내 일이란 뜻이죠.
주아영, 그 애를 봤을 때도 한눈에 알아봤죠. 내게 ‘하진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어머니!’ 하면서 살갑게 달라붙더군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보다시피 나나 하진이는 뭔가 잘못되면 잃을 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약점이 될만한 것들은 최대한 남기지 말라고 가르쳤죠.
제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진이는 밖에서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첫마디부터 거짓말이라니 더 볼 것도 없었죠. 물론 그 뒤에도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고 말입니다.
그 애는 여전히 변한 게 없네요. 나 때문에 둘이 헤어졌다고 하던가요? 하진이가 그 애랑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건 그 애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하진이랑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이현이와 말입니다.
하진이가 결혼식을 올리고 세 달도 살지 못한 건 전부 주아영, 그 애 때문입니다. 하진이는 결혼식 이틀 전에 이 사실을 알았지만 나와 애아빠의 체면 때문에 그대로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둘이 갈라서기 직전에 하진이에게 들었고요.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진행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진이가 의대에 다시 복학하겠다고 사정만 하지 않았으면 결혼을 시킬 일도 없었을 텐데 지금도 후회가 되네요.
애초에 하진이가 토론 동아리에 들어간 것을 끝까지 막았어야 했습니다. 사춘기 한 번 없었던 아이라 약간의 반항인가 하고 생각만 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토론 동아리를 싫어하는 이유라. 간단합니다. 하진이는 무언가 표출하는 일에는 재능이 없기 때문이죠. 특히 말도 없는 애가 그런 동아리에 들어가서 뭘 할 수 있죠? 의대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그 아이 인생에선 가장 최고의 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왜 그런 길을 놔두고 지금 그렇게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하진이는 어릴 때부터 말이 느렸습니다. 3살이 됐을 때 시터가 제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더군요. 아이가 말을 해야 할 시기가 지난 것 같은데 말이 없다며 병원에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죠. 엄마가 변호사고, 아빠가 대학 교수인데 애가 말을 못 한다는 게 이해가 어렵더군요.
겨우 시간 내서 간 병원 원장님은 아이가 듣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화를 자꾸 시도하라고 했습니다.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과 함께요.
시터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해서 자꾸 말을 걸게 했죠. 시터가 없을 때는 하진이 방에 계속 라디오를 틀어놓았습니다. 잠자는 시간에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나는 시끄러운 걸 아주 싫어하죠. 그래서 그때마다 내 방으로 돌아와 일을 했습니다. 하진이와 내 방은 가장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그래도 조금씩 들려오는 소리는 어쩔 수가 없어서 내게도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네 달을 하진이 방에서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니 그때서야 겨우 말을 시작했죠. 말을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평생 말수가 적더군요. 어쨌든 필요한 말은 다 하니까 의사소통에 어려움도 없었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내게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죠.
시끄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내가 조금 과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매일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집에서만큼은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죠.
아이가 자라기엔 적막한 환경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하진이에게 부족함 없이 모든 걸 지원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진이가 무언가 조금 못한다고 해서 다그친 적도 없었죠. 칭찬할 때나 권유할 때만 짤막하게 말하고 못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 좋은 결과를 내니까요.
말하고 싶은 순간도 물론 있었습니다. 특히 하진이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런 편이었죠. 만나고 오셨다는 주아영을 비롯해 주아영과 바람난 하이현이 하진이의 오래된 친구라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죠.
주변에 만나는 사람이 늘 별로였습니다. 어떻게든 하진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가득했는데 하진이는 싫은 소리 못하고 전부 받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표현에 서툰 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하지 않았죠. 혹시 뭔가 잘못된다 해도 내가 수습하면 되니까요.
그럴 때면 정말 이름의 힘이란 게 있나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진이 이름은 내가 지은 겁니다. 물 하, 나아갈 진. 물이 힘차게 나아가듯이 살라고 지어준 이름인데, 사람들한테 물처럼 보이는 건가 했죠.
물론 이 말은 가벼운 농담으로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니까요. 애아빠는 하진이라는 이름을 반대했습니다. 동양철학 교수였거든요. 하진이 사주에 이미 물이 많고 금도 많아서 우울증 걸리기 쉬운 사주라고 했던가, 이름에서라도 물을 빼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애초에 내가 교수고 애 아빠가 대학교수라 하진이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고, 앞으로도 평생 부족함 없이 살 겁니다.
애초에 우울증이 생길만한 환경이 주어지지도 않을 텐데 우울증 걸리기 쉬운 사주란 게 말이 될까요. 혹시 생긴다 해도 저희의 지원을 받으며 금방 치료할 거고요. 이렇게 반박했더니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며 애아빠가 한 발 물러섰습니다.
아, 하진이가 본과 1학년 재학 중일 때 저랑 애 아빠는 이혼했습니다. 가끔 하진이랑은 연락하는 것 같더군요. 나는 이혼 이후 하진이의 결혼식 때 한 번 보고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진이가 본과 2학년을 마치고 갑자기 휴학한다고 했을 때도 난 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진이는 내가 침묵하는 걸로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겠죠.
알면서도 3개월 넘게 휴학을 유지하더니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한 겁니다. 나랑 살던 집에서 떠나 새로 가정을 꾸리고 싶다면서요. 복학을 하겠다는 조건을 걸면서 결혼을 지원해 달라기에 별 수 없이 해준 겁니다.
결혼생활이야 나중에 어떻게 하더라도 일단 번듯한 직업은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하진이는 의사 말고는 할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아영 그 애가 마음에 안 들어도 결혼의 모든 지원을 한 겁니다. 나는 주아영, 그 애는 평생 보지 않겠다고 말했고 하진이도 그렇게 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진이가 결혼한 지 세 달도 안 됐을 때, 하진이가 내게 집이 시끄럽다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그 애답지 않게 횡설수설하고 말이 길어지기에 이상해서 말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주아영의 바람 소식을 전하더군요.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최대한 조용히 끝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온갖 소송으로 주아영과 하이현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하진이가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그 새벽에 그 집에 갔던 겁니다. 내가 오전 일찍부터 법정에 가야 했기 때문에 비는 시간이 그때뿐이었고, 오전에 빠르게 얘기하려고 한 거죠. 문도 하진이가 열어준 거고요.
하진이가 시끄러워서 힘들다기에 주아영이 일어날 때까지 소리가 날 만한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는데, 주아영이 소리를 지르더군요.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냐고 빽 소리를 지르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마구 짐을 싸서 그대로 나가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연락 한 번 없더군요.
이래도 내가 이상한가요? 자기 잘못은 쏙 빼고 떠벌리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지만 그 애는 정말 지긋지긋하네요. 여전히 시끄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하진이는 그 뒤로 학교를 다시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혔어요. 히키코모리가 된 거죠. 물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진 않아서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기야 했을 겁니다.
내가 자는 시간에도 한두 번씩밖에 나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죠. 딱히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를 겪은 아이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의사는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다른 일을 스스로 찾겠다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나간다고 해서 내가 하진이가 어디 있는지 모를 리 없죠. 이상한 중소기업에 고졸 신분으로 입사를 했더군요. 조만간 데려올 생각입니다.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나는 강서인의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정리했다. 나가자마자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옮겨 적겠지만 쓸만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강서인은 자신의 이야기만 했을 뿐, 정작 이하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게 고의든 원래 본인의 성격이든, 어쨌든 더 물어도 나올 건 없을 것 같았다. 빠르게 자리를 마무리하는 내게 강서인이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하진이에게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알아봤습니다. 아직 쓰신 책이 한 권도 없으시던데요.”
“네. 하진이를 위해 쓰는 책이 첫 책이 될 겁니다.”
“그래요? 음..”
강서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다 이내 온화한 미소를, 아니 조금은 가식적인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이다음엔 누구에게로 가실 거죠?”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진이의 오래된 친구, 하이현. 그리고 함께 근무하던 직장동료를 만날 예정입니다.”
“참고하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