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단편소설입니다.
* 글의 재미와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에 예외를 둔 부분이 있습니다.
이하진을 알게 된 건 그가 올린 영상 때문이었다. 그저 흰 종이에 여러 문장들을 적는 영상이었다.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그의 손만 나왔다. 배경음악도 없었고 연필이 사각거리는 asmr도 없었다.
조명도 없이 핸드폰으로 대충 찍는지 영상도 대체로 어두웠고 무슨 문장을 쓰는지 안 보인 적도 있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무척 불친절한 영상이었다.
당연히 구독자도 조회수도 적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영상들을 유심히 봤던 건 그가 쓴 몇몇 문장과 필체 때문이었다.
‘영원이란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영원한 후회를 건네고 싶다. 어렵다면 영원에 견줄 만큼 가능한 오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외의 것은 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속인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필체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회의적이고 자조적인 문장을 쓰는 것과 달리 그의 필체에서는 전혀 다른 성격이 드러났다.
그는 기본적으로 글자를 크고 둥글둥글하게 썼다. 글자 사이의 간격이 넓은 편이었고 글자를 꾹꾹 눌러서 썼다. 세로획을 쓸 때는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서 쓰고 문장의 마지막 부분은 늘 오른쪽 위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 생각이 많기보다는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의 필체였다.
한마디로 이런 영상과는 거리가 먼 타입의 사람이란 뜻이다. 영상을 올리기 위해 글씨체를 꾸며서 쓰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글자를 쓰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자신이 원래 가진 필체란 뜻이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홀린 듯이 그의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내가 도와줄게요.’
나는 방문을 열었다. 지저분했던 방 안의 짐들은 모두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필요한 것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가 보낸 녹취록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어떠셨나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말하더군요. 마치 당신이라는 사람이 여러 명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강서인은 당신이 표현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말하던데 주아영은 당신이 풍경화를, 하이현은 당신이 만화를 잘 그렸다고 했어요. 남혁민은 당신이 말도 잘하고 심지어 화도 종종 내는 다혈질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는 풋하고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제게서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만 본 거죠.”
“그들이 거짓말을 한 거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다기보다는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각색해서 말했다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특히 이 녹취록만 보면 남혁민 씨는 정말 저를 아끼는 사람처럼 보여요. 실제로는 제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확실히 이하진 씨가 알려준 것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어요. 들어오자마자 고졸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상사의 예쁨을 받는 당신을 질투하며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다고 했었죠.
이하진 씨랑 친해진 계기를 말할 때는 놀랍더군요. 회식자리에서 화를 내며 테이블을 쾅쾅 친 건 남혁민이지 않습니까. 고졸 새끼 예뻐하지 말라고 상사에게 화를 내며 회식 분위기를 망쳤으면서 그걸 이하진 씨가 했다고 말하더군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입니다. 미리 당신을 통해 알지 못했다면 그 말이 사실일 거라고 믿었을 겁니다.
당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도 마치 당신이 털어놓은 것처럼 말하더군요. 당신을 괴롭히러 온 하이현에게 들은 것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하이현에 대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편이었죠. 살짝 거짓말도 곁들여서. 아무래도 직접 본 사람에 대한 얘기는 좀 더 쉬웠겠죠.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는 내 말이 흥미롭다는 듯이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이현은 계속 당신을 쫓아다니며 괴롭혔지만 마치 당신과는 오랫동안 연락을 못한 것처럼 말했죠. 그리고 당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중학생 때 이후의 당신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지 못했어요. 그럴 만도 했죠. 당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하이현이 날 괴롭히기 시작한 건 어머니를 보고 난 이후부터에요. 그전까지는 적어도 괴롭히진 않았죠. 만화를 계속해서 그려내라고 강요하긴 했지만 폭력은 없었어요.”
“강서인이 하이현의 인사를 받지 않았던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정말 사소한 이유네요.”
“하이현에게는 아니었겠죠. 그런 걸 참아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
“자료는 준비하셨나요?”
“네. 하이현이 최근까지 저를 협박하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네요. 덕분에 하이현이 자신의 손으로 할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까.”
강서인의 협박으로 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신세를 졌다는 하이현의 말은 사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충격을 받아 쓰러진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하이현은 병원비를 감당하는 대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숨 쉬고 있는 할머니를 죽였다.
그러면서도 강서인이 자신의 할머니를 죽였다며 하이현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해서 협박하고 돈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다. 이하진은 하이현이 협박했던 말들을 토대로 이 사실을 알아내고 증거자료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주아영은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주아영에게는 큰 악감정 없어요. 뭐 돌려줄 건 있겠지만. 어쨌든 제가 실제로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제게 늘 불만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주아영은 이하진과 잘 맞는다고 표현했지만, 이하진은 주아영이 늘 화를 내고 자신을 다그치는 모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강서인은 조금 특이했습니다. 숨겨야 할 건 안 숨기고 이상한 것들을 숨겼다고 해야 할까요.”
“숨긴 게 그 정도였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인터뷰도 저를 위해서 해준 게 아니라 제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응한 것이겠죠.”
“이하진 씨 당신 방을 라디오 소리로 가득 채우던 걸 순순히 말했어요. 사실 미친 짓 아닙니까. 세 살짜리의 아기를 24시간 내내 방에만 가둬둔 채 라디오를 틀어놓은 게. 그것도 네 달 동안이나. 평범한 성인도 그렇게 하면 정신병에 걸려 미칠 겁니다.”
“무당이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더군요. 덕분에 저는 평생 소리에 민감한 상태로 살아야 했죠.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미칠 것 같고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대로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무당을 찾으셨나요?”
“네. 제 이름을 짓는데 사주를 전혀 신경 안 썼다는 부분을 보고 어찌나 웃기던지. 무당말만 듣는 사람이 말이에요. 부잣집 아들인 아버지와 어떻게든 결혼하고 싶어서 임신했는데 낳고 보니 사주가 영 별로였다고 했죠.
아버지 몰래 그 아이를 버리고 자신과 사주가 맞는 아이를 찾아 입양하는 미친 짓을 벌일 줄이야. 변호사라는 직업이 이런데 도움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게 저였어요. 이하진이라는 이름도 그 사주에 맞게 지어진 거고 말입니다. 사건 의뢰도 해결도 자식 교육도, 자신의 모든 인생을 무당한테 의지하는 게 대단하지 않나요.”
“네. 직접 보니 더 그랬습니다. 전혀 그럴 사람처럼 안 보였죠.”
“아버지는 그 사실을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어요. 원하지 않는 결혼 때문에 늘 바깥으로 나돌던 분이셨으니. 저에 대한 애정도 그다지 없으셨지만, 집에 오실 땐 그래도 관심 있는 척이라도 하셨죠. 제가 친아들이 아니란 걸 알고 나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혼하시더군요. 그날 처음으로 집이 무척 시끄러웠던 것 같네요.”
“집을 고요하게 만든 것도 무당 때문입니까?”
“그렇게 해야 집안이 번창한다고 했다더군요.”
이하진은 허탈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런 이하진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가 내게 자신의 얘기를 말로 꺼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당신을 도울 수 있다며 만남을 요청했던 날, 그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사연이 적힌 종이뭉치를 건넸다. 내용이 부족한 부분이 많아 직접 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는 글 안의 내용만 알면 충분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정말 그들을 영원히 후회하게 만들 수 있나요?’
나는 그에게 ‘네.’라는 한 글자의 대답만 했다. 그는 그 대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가 가능하다는 내 말을 정말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인터뷰 일정을 조용히 넘길 뿐이었다. 잠시 첫 만남을 떠올리던 내게 이하진이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요?”
“네?”
“당신이 본 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제 생각이 중요합니까?”
“네. 저는 이제 제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남이 생각하는 나만 중요해졌죠.”
“그렇습니까.”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가치조차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나의 댓글 한마디에 모든 걸 털어놓은 건 그래서인 것 같았다.
“글쎄요. 왜 그렇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영리하고 치밀한 사람이에요. 제가 손 내밀지 않았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쯤은 충분했을 텐데요.”
“그것도 정말...... 타인의 시점이네요.”
인터뷰를 했던 다른 네 명과는 또 다른 말을 꺼내는 나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더니 커피를 들고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쓸쓸하게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말을 다 믿으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네.”
“전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이하진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내 대답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단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덤덤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하루에 200번이나 거짓말을 한답니다. 8분마다 한 번씩 거짓말을 뱉는 셈이죠. 저도 제가 한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제 제게는 그게 좀 힘드네요.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고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삶은 참 외로운 삶이에요.”
“......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제게 약속하신 건 믿어도 되죠? 책을 완성해 준다는 말.”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책상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항상 공허하던 그의 눈빛에 가벼운 생기가 돌고 있었다.
“...... 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조금 늦게 대답했다. 그 찰나의 침묵 속에서 그가 무엇을 느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가벼운 미소만 지으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주저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나는 그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지만 그가 부탁한 대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기고 간 커피의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사실 제가 한 말도 거짓말이었습니다.”
이하진의 유골함 앞에 섰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이하진을 위해 말할 뿐이었다.
“이하진 씨가 그랬죠. 영원한 건 없다고. 네. 영원한 후회 같은 건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도 후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모두에게 완성된 책과 함께 각자에게 맞는 선물을 보냈다. 주아영의 가족들에게는 친자확인서를 보냈다. 그녀의 아들은 결혼한 남편의 자식이 아닌 하이현의 자식이었으니까. 주아영은 아이만 데리고 맨몸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강서인이 그동안 담당했던 모든 의뢰인들에게는 소송의 진실을 밝히는 증거자료와 서류를 보냈다. 무당의 말 한마디로 자신들의 인생 중대사가 결정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수천 명의 의뢰인들은 강서인에게 집단소송을 걸었다. 강서인은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한 채 반쯤 미쳐서 무당을 찾아다녔지만 무당은 이미 잠적한 뒤였다.
하이현은 자신의 할머니를 살해한 범행이 밝혀져 교도소에 수감됐다. 물론 그도 주아영의 친자확인서를 받았다.
남혁민에게는 이하진의 유서 사본과 함께 그의 학력 위조 사실이 담긴 서류를 그의 직장과 집으로 보냈다. 이하진은 유서에 오직 남혁민의 이름만 적었다. 남혁민에게 당했던 사실과 괴로웠던 자신의 심정을 구구절절 담아서.
이하진이 의대를 다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고졸 출신이라고 무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던 남혁민이야말로 정말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학력을 위조해 회사에 입사하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도 관둬야 했고 당연히 재취업도 할 수 없었다. 가족들마저 외면하면서 그는 집안에 갇힌 채 은둔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벌들을 받았지만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이하진에게 원망을 쏟아낼 뿐이었다. 이하진 같은 인간이랑 얽혀서 자신들의 인생이 망했다며 이미 죽은 사람을 또 죽이고 싶어 할 뿐이었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란 걸. 영원한 후회는커녕 후회도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거 이하진 씨가 더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누구도 대답해주지 못할 말들은 허공에서 떠돌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쩌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하진을 만난 날, 그는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글씨체가 흥미로워서 연락했다는 나의 빈약한 거짓말도 쉽게 믿었다. 작가라면서 출간한 책이 한 권도 없고 쉬운 어휘만 쓰는 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책을 쓰고 널리 알려 그들을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허점투성이의 계획에도 별 말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도와달라고, 나를 믿겠다고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 도움은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고 자료도 빠짐없이 모아뒀으니까. 그에게는 내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내가 사실은 이하진이었다는 걸 알았던 거 아닙니까.”
갓난 아기일 때부터 고아원에 버려진 나는 부모가 누구인지, 왜 버려졌는지도 모른 채 컸다. 고아원 원장을 은밀히 찾아온 무당과의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나는 사주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강서인이 버린 진짜 이하진이었다. 물론 버려지지 않았다면 이름은 이하진이 아니었을 확률이 더 높을 테지만.
강서인은 나를 버린 이후에도 무당을 통해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고아원을 몰래 탈출해 신분을 감추며 살아왔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내겐 그런 능력도 환경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할 뿐이었다. 그래도 강서인이 유명한 변호사였기에 가끔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곤 했다.
나를 대신해 이하진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존재도 알게 됐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매일 공사판을 전전하는 나와는 다르게 명문고와 의대를 진학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까지 하는 걸 보며 혼자서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러던 도중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글씨체에 따른 성격을 검색한 후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어내 그에게 접근했다.
그에게서 전해 들은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무척 달랐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보기 전까지는. 아니, 사실 다 만나고 와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제각각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가 자신의 죽음을 말할 때까지도 온전히 그를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나의 허술한 계획에 자신의 꼼꼼한 계획을 덧씌우며 계획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죽음을 막지 않기를 부탁했다. 내가 쓴 책을 선물 받기만 하면 충분할 것 같다면서. 그때는 그저 타인의 죽음을 방관한 내가 죄책감을 갖게 될까 봐 염려해서 그런 말을 한 줄 알았다.
“당신이 죽으면 내가 그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당신이 내 인생을 뺏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미안하다고 말한 겁니까!”
나는 이제 거의 악을 쓰듯 소리 지르고 있었고 어느새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놀란 직원이 뛰어 왔지만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돌려보낸 후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타인의 인생만 살면서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살던 사람이었으니까. 마지막까지도 그는 자신을 타인으로 지정하며 살아온 인생을 내게 돌려주려 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내게 직접 말하지 않고 글로 전달하거나 타인을 통해 전달했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그가 얼마나 알았고, 어디까지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진실을 말해줄 이하진은 이제 없고, 나는 영원히 이하진이 될 수 없으니까. 그저 영원히 타인인 채로 그의 의중을 추측하며 살아갈 뿐일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유골함 앞에 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섰다.
“그들을 영원히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그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막지 못한 것도. 그래도 하나는 지켜서 다행입니다.”
나는 옷을 툭툭 털고 화장터를 떠났다. 그의 유골함 앞에 책 한 권을 놔둔 채.
타인의 시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