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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잃어버린 시대

250415

by StarCluster

모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 홀에서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우두커니, 지루하게.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지만 어차피 음식물 쓰레기와 종량제 봉투를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나왔기에, 가지고 나왔더라도 손에 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허전했다. 무언가 안 가져왔다는 무게감이 아닌, 그 작은 기계로부터의 끊임없는 외부 자극이 사라진 고요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심심하구나, 나는 지루할 틈이 없이 살고 있구나. 지금 어떤 것도 나를 자극하지 않는구나.’


외부 세계에서 오는 자극이 끊어지고 나서야, 생각은 나 자신에게로 이어졌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곳곳에 넘쳐나고, 지루함은 마치 죄악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런 자극도 없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여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고요한 밤, 더 볼 것도 없지만 멈출 수 없이 계속 넘겨보는 짧은 영상들. 봤던 것을 보고 또 보고, 이미 달아둔 하트(좋아요)를 다시 확인하며, 이제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잠이 안 와 몇 번을 더 넘긴다. 잠을 더는 미루지 못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나서야 시작되는 여백의 시간. 그리고 이불을 걷어찰 만큼 뜨거운 성찰의 여정을 떠난다. 오늘 하루의 실수부터, 잊고 싶었던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어쩌면 ‘이불킥’은 하루의 끝, 가장 조용한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개인적 성찰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마주하기를 두려워 늘 버티고 버텨보지만 언젠가는 직면해야 하는 그 시간.


그렇기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자발적인 성찰의 자세를 지닐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빠른 속도와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내면의 균형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일부러 ‘느림’과 ‘멈춤’의 가치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요가나 명상 속으로 향한다. 느린 동작 사이에서 감각을 섬세하게 느끼고, 잊고 있던 자신과 다시 만난다. 또 다른 이는 두 발로 단단한 땅을 딛고 천천히 주변을 거닌다. 생각의 속도를 발걸음에 맞추며,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리듬을 되찾는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는 단편적인 생각들을 붙잡아, 손 끝으로 활자라는 시각적 형태로 눌러 담는다. 감정을 서두르지 않고 묘사하며, 사건의 흐름을 찬찬히 되짚다보면, 무심히 지나쳐 온 것들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다.




눌러 쓴 글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텍스트들이 마치 시간을 붙들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과거의 감정과 생각을 되짚어보며,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잠시나마 가늠해보는 과정. 그래, 글을 쓰는 일은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다시, 천천히 되돌아보도록 느리게 쉬어내는 숨이구나. 거센 해류 위에 조용히 띄운 단단한 부표처럼 빠른 시간 위에 잠시 머무는 일이구나.


삶에 의도적인 ‘멈춤’의 순간을 선사하고, ‘느림’ 속에서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깊은 가치를 깨닫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는 것이 큰 용기가 되어버린 시대. 하루의 틈에서 찾은 여백에 진정한 나의 모습을 조금씩 채워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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