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던 학년이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도, 아이들도, 그해를 지나온 이들 전부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이듬해에 누군가는 그 자리들을 채워야 했다. 선뜻 그 자리를 자처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와 만날 때면 별다른 메뉴 고민 없이 감자탕 집에 자주 갔다. 그날도 각자 그릇에 뼈를 하나씩 놓고 찬찬히 먹던 중이었다. 간만에 만나 여러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조용하게 말을 꺼냈다. "저 내년에도 이 아이들 맡아보려고요." 말끝은 나직했지만,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더위가 가시기 전에 나눈 대화였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 말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연말이 되기 전에는 바뀔 거라 생각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금도 이미 맡고 있는 그 학년과의 고된 시간을 되짚게 되면, 그 마음이 달라질거라 치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업무분장 희망원을 제출하는 2학기의 막바지가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몇 번을 되물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1년을 그 아이들 및 학부모들과 고생했다고.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고, 충분히 했다고.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그 길을 선택했다. 그는 너무도 애썼던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맡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힘들 때마다 헬스장에 갔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듯이, 그는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바로 세웠다. 무거운 바벨을 들 때마다 속으로 어떤 무게를 함께 들어올리는 듯했다. 자신을 이겨내기 위한 반복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순간에, 그는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이 힘든 일을 맡으면서도,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의 사려깊음을 느꼈다. 그 자리를 자처하면, 다른 한 사람만큼의 무거움을 덜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고생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히 짐을 나눠 들려 했다. 그것이 그가 그 자리를 또 한 번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정한 바는 그대로 이루어졌고,
결코 짧을 수 없는 1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흘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밤 늦게 조용한 식사 자리에 마주 앉았다. 선생님과 또 감자탕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따뜻한 국물 사이로 오간 이야기 끝에 물었다. "선생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그 선택을 하셨을까요?" 그는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여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음… 아마도, 안 하겠죠?"
그 대답에 나는 큰 놀라움을 느꼈다.
그 고생을 해놓고도 쉽게 말하지 않는 태도와 망설임에 더욱.
"선생님. 그렇게 고민을 한다는 그 사실부터가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다른 사람이면 대번에 안 한다고 말했을 거예요. 선택을 엄청나게 후회한다고 말할거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시네요."
그는 말했다.
"제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고 싶었어요."
듣는 순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임을 바로 알았다. 누가 강요한 것도,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던 그 하나가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렇게 철학자 니체의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 말을 처음 접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강해지고자 하는 이가 내비치는 한 순간의 의지라기보다, 고통을 지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이후로 나는 항상 선생님을 보며 니체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는 문장의 화신이 되어 살고 있었다. 그는 말이 아닌 삶으로 그 문장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