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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by StarCluster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험이라는 이름 아래 생각은 견고해지고, 익숙하게 길이 나버린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만큼 무언가를 빠르게 판단하지만, 속단의 덫에 걸려 낯선 것을 낯설게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상을 인지하는 순간, 평소의 습관대로, 나름의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해석하고 설명하려 드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탓이다.


그래서일까. 이해되지 않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접했을 때, “왜 그럴까?” 하고 먼저 묻게 된다. 그 물음은 순수한 호기심이나 이해의 욕구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거나 성급히 답을 내려버리는 경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어느새 나의 생각으로 그를 단정짓고 있었다. 아직 끝맺지 않은 말과 표현이었음에도 벌써 나는 답을 짜맞추려 했다. 닮은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는 법. 그렇게 내린 결론은 결코 그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답답함이 남았고, 이후의 대화도 마음만큼 후련하게 흐르지 않았다.


문득, 먼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고 말이다. 그저 단순하게 그를 바라보기 위해, 이 한마디를 되돌려주기 위해서. 이제는 나의 버릇이 되어버린, 습관으로 굳어버린 관성을 거슬러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 그렇게 태도가 전환되는 순간, 해석과 평가의 필요는 옅어진다. 그 사람이 어떤 서사를 지나 지금 여기에 있는지, 그의 생각과 감정을 나의 추측과 상상이 아닌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로 채워갈 수 있게 된다.



성급했던 물음표는 그 존재를 나의 안에서 멈추게 하였고,

차분했던 마침표는 그 존재를 그의 안에서 시작하게 했다.



그를 이해하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쉬이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그만의 우주를 품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는 그 내밀한 영역을 헤아릴 수 없다. 판단을 유예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인지적 지형을 지나왔는지, 어떤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는지, 어떤 고통과 기쁨이 켜켜이 쌓여 있는지를 완벽한 타인으로서 지금 잠시 곁에 거하는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서로를 이해하고자 주고 받는 말 또한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듣는 이에게도 자신의 세계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종종 그 본래의 뜻을 왜곡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상대의 말은 내 안에서 제멋대로 변형된다. 말은 말 그 자체로 남기보다, 내 안의 오래된 언어와 엉켜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곤 했다. 그래서 함부로 단정하거나 속단할 수 없다. 다만 존재를 있는 그대로 두는 마음이 유효한 것이다.


차분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건넨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는 말 다음에야 상대의 깊은 내면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이 말 이후에 조용히 머무르는 시간은 그의 더 깊은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는 여백을 남긴다.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영역이 조심스럽게 형성된다. 우리의 대화는 여전히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지만, 본질은 존재를 나누는 일에 가까워진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표정, 비일상적인 주제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 안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남아 있더라도, 그러한 흐름까지도 그 사람의 결로 받아들여진다.


이해하고자 다가섰던 마음은 자연스레 수용의 태도로 접어든다. 가볍게 내렸던 평가는 사라지고, 그의 세계를 받아들이고자 나의 세계를 잠시 내려놓는다. 이윽고 그가 어떤 삶의 흐름 속에서 이 말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후의 대화 속에 자연스레 등장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물음표.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자세.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한마디의 말. 어떤 해석이나 판단도 잠시 미루어두고, 그에 앞서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는 고요한 마음이 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온전한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그가 고르고 고른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가 전하려던 마음이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조금 더 나아가 우리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마저 받아들이게 된다면, 더 깊은 수용이 가능해진다. ‘결코 나는 너를 다 알지 못한다.’는 무력함이 담긴 고백은 오히려 관계 속에서 서로를 신뢰하는 단단한 밑바탕이 된다. 나의 방식으로 섣부르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존재를 곧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서로를 연결하는 견고한 다리가 되어주는 것만 같았다.


우주 한가운데 명멸하는 별빛처럼 저마다 고유한 궤도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 서로 다른 시간과 방향을 품은 우리가 잠시 교차하는 이 순간,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그 자체로 빛나도록 지켜보는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로의 빛을 잠잠히 목도할 때, 그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어느새 너와 나를 가장 깊이 이어주는 하나의 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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