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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Oct 01. 2021

불안과 친해지기-1

 '불안'이라는 이 두 글자를 꺼내는 것이 어려웠다. 언젠가 꼭 글로 한 번 풀어내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면하는 것이 두렵다고 할까. 지금도 망설이고 있다.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한다. 이 또한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자각하니 한결 가벼워진다. 이 글은 불안감이 높은 나를 위한, 나에게 보내는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다. 2021년의 3분의 2를 보내면서 나는 이 녀석과 꽤 많이 친해졌다.




 나는 사실 내 안의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 불안이 정확히 뭔지 모르고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기간만 되면 그렇게 배가 꼬일 듯이 아팠고, 취직을 한 이후로는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라는 정확한 진단명도 갖게 됐다.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배가 아파 병원 신세를 지는 날에는 늘 위 내시경까지 해야 했다. 의사가 하는 말은 비슷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마세요.' 나는 그래서 몸에서 보내는 이런 신호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의 특징이겠거니 내 직업 때문이겠거니 했다.


 6년의 기자 생활을 정리했다. 경찰 출입이 필수인 사회부에서만 꼬박 6년이었다. 신기하게도 일을 그만두니 배가 아프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맞았구나. 회사가 만병의 근원이로세. 망할. 집에서 놀고 있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백수였던 6개월과 아이를 임신했던 10개월을 합해 16개월은 위염약을 단 한 알도 먹은 기억이 없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2018년 1월,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하니까. 제발 불안해하지 마."


 나는 남편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뭐? 이게 불안이라고? 좀 불쾌했다. 아니야. 이건 불안이 아니야. 그냥 아기를 걱정하는 거지. 엄마의 마음이라고. 그러면서도 남편의 말이 내내 거슬렸다. 내가 그렇게 보였나? 잠을 좀 더 푹 자면 괜찮아질까? 내가 사고 싶은(아니 사야만 하는) 브랜드의 기저귀를 사면 좀 괜찮아지겠지?


 맘 카페에서 극찬하는 해외 브랜드의 기저귀를 사도, 잠 잘 오게 하는 싸개의 종류(속싸개, 스와들업, 머미쿨쿨)를 세 번이나 바꿔도, 아이 입에 잘 맞는 걸 찾아주기 위해 공갈젖꼭지와 치발기의 브랜드를 5~6개나 사도 나는 성에 차지 않았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찡그리면, 당장이라도 새로운 것으로 갖다 바칠 준비가 돼있었다.


 남편은 '좀 그러면 어때' 주의였다. 기저귀에 발진이 좀 올라오면 어때. 기저귀 좀 열어두면 되지. 잠 좀 못 자면 어때. 다음 날 많이 자겠지. 공갈젖꼭지 좀 안 하면 어때. 울다가 좀 그치겠지. 남편은 아이를 셋 정도 키운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는데, 남편은 그 말을 늘 최후의 통첩으로 썼다. "(이렇게까지 설득해도 너는 내 말을 안 듣는구나. 그렇게 계속 불안하구나. 그래)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이 야속했다.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지 않은 걸까. 내 맘대로 못하게 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남편은 늘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정말 많이 싸웠는데, 그 싸움의 99%는 이런 패턴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7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거의 싸우지 않았었다) 난 불안했고-무언갈 사거나-패턴을 바꿔서 원인(불안)이 해소될 때야 안심했고. 남편은 일단 불안하지 않았고, 불안한 내가 무언갈 사거나 패턴을 바꿀 때 의논을 하지 않거나 근거(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없이 일을 저지를 때 불만이 쌓이는 식이었다.


 아이에 대한 나의 불안은 육아용품을 사는 한정적인 부분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울거나 다쳤을 때, 놀이터에 나갔을 때, 밥을 먹일 때, 이유식을 만들 때, 아이 빨래를 할 때, 낮잠을 재울 때, 밤잠을 재울 때, 어린이집을 알아볼 때,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 모든 때에 나는, 크든 작든 불안했었다. 사실 이때는 이것이 불안이라는 감정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너, 불안해 보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 혼자서만 "아니야, 첫 아이라 그런 거야. 주변에 같이 키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야."라고 둘러댔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네 살이 되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구나. 나는 '불안'을 낳은 거구나. 아이=불안이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44개월. 아이를 통해 내가 드디어 내 안의 불안을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아이는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고 진작에 독립된 존재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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