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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Sep 21. 2023

리얼 100% 진짜배기 새우탕!

국물맛이 끝내줍니다.

해마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 맘 때면 꼭 잊지 않고 내 돈 내산으로 신안 햇새우를 주문한다. 내 입은 고기보다 해산물에 더 깊은 애정을 표한다. 특히나 새우나 전복, 조개나 꽃게류를 유독 좋아하는 편이다. 로또처럼 더럽게 안 맞는 남편은 식성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거의 모든 해산물류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해산물류로는 배가 부르지 않는단다. 포만감 별로인 음식을 굳이 비싼 돈 주고 뭐 하러 먹냐는 도통 이해 안 가는 말만 구시렁댄다. 나 역시 지금은 남편에게 그러한 요리들을 먹을 거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양념 된 시판 고추장 불고기를 얼른 볶아서 그 옆에 살포시 올려두면 그만이다.

워낙 육식파인 그에게 해물류는 그저 술자리에서 2차나 3차의 안주거리일 뿐이다. 절대 메인요리가 될 수는 없다.

(내년에는 싱싱한 햇새우가 도착하는 날 남편의 회식 소식을 기다려본다. 그나저나 맘 편히 계속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올해 첫 햇새우를 주문한 날에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소금구이로 새우를 깔끔하게 해치웠다. 이건 요리도 아니다. 일에 소금을 깔고 새우를 그 위에 올리면 끝이다. 그 이후 초고추장을 준비하면서 새우가 붉은 주황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예전에 사놓은 얼마 남지 않은 천일염을 탈탈 털어 마지막 한 알까지 고이 담았다.

매번 아는 그 뻔한 새우구이 맛에 또 홀딱 반해버렸다. 올해도 한 번으로 끝내기는 못내 아쉬웠다. 같은 곳에서 또 한 번 다시 재주문을 했다.

하필이면 두 번째 새우가 배송 예정인 그날 하루종일 을씨년스럽게 가을비가 내렸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비가 오니 내 입이 또 말썽이다. 구이보다 탕이 아른거린다. 저녁을 얼큰한 탕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 진다. 밖에 나가기도 귀찮다. 재료는 배송된 새우밖에 없다. 하는 수 없다. 몸값 오른 귀한 천일염도 구하기 어려운 판국에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요리인 리얼 100% 진짜배기 새우탕을 끓여본다.

<내 돈 내산으로 주문한 신한 햇새우 : 1차전은 새우소금구이, 2차전은 리얼 100% 새우탕>

싱싱한 햇새우와 함께 냉장고에 있는 무, 호박, 팽이버섯과 어제 사놓은 500원짜리 콩나물 한 봉지만 있으면 게임 끝이다. 게다가 며칠 전 김치찌개 끓이고 남겨두었던 목숨이 위태로운 두부 반모까지 대기 중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미리 예견된 일처럼 모든 재료가 찰떡궁합을 이룬다. 고추장과 된장 없는 집도 없을 터 고추장과 된장 골고루 풀어주고 맛술 한 방울과 함께 무, 간 마늘과 청양고추, 대파 넣고 끓이다가 나머지 야채를 투여한다. 어느 정도 끓어오르면 새우와 두부 넣고 한 소금 더 끓이면 된다. 손맛 같은 거 없다. 비법도 없다. 그저 들어간 재료들만 믿으면 된다. 혹시라도 싱거우면 맛간장 넣으면 된다. 더 매운맛을 원하면 청양고추만 추가하면 된다.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자. 재료에서 우러난 천연 자연의 맛을 느끼자!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맛이 곧 내 입안을 감동시킨다. 혼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혀가 데는지도 모르고 국물을 계속 떠먹는다. 새우를 먹기 위해 끓인 건지 국물을 먹기 위해 끓인 건지 점점 헷갈리는 사이, 냉동 새우는 쳐다도 보지 않은 딸내미가 슬금슬금 껴들어서 내 햇새우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야! 이거 내가 먹으려고 끓인 거야!"

먹는 거 앞에서 자식이고 뭐고 없다잉?! 옆에서 누가 뺏어(?) 먹으니 더 빨리 먹게 된다. 결국 또 남은 건 국물이다. 밥에 두부까지 으깨서 비빈 후 국물과 섞어서 한 입에 꿀꺽하고 다시 한번 담백한 국물을 떠먹는다.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동시에 온몸에서 땀샘 폭발 기운이 느껴진다. (곧 갱년기가 오려나보다)


나이가 드니 입맛이 변하는지 자꾸 국물이 더 당긴다.

건강을 생각하면 오히려 국물보다 건더기 위주로 먹고 국물은 참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점점 국물이 좋아진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술 뜨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요즘은 국물과 함께 밥심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중이다. 현미를 섞은 밥이 거칠어도 국물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그 국과 밥을 매일 하는 게 지겹고 귀찮아서 한 때 빵 마니아로도 살아봤다. 사람은 결코 빵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역시 난 토종 한국인인가? 한국사람은 밥과 국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하기로 했다.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은 쾌청한 하늘을 기대했건만 코끝으로 찬바람이 기운이 가득하다. 감기에 걸리기 쉬운 찬바람이다. 오늘도 이 찬바람에 내 몸을 지켜줄 뜨끈한 국물이 뭐가 있을까?  나 자신을 위한 메뉴로 이왕이면 마트에서 본 톱밥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꽃게 데려와 거하게 꽃게탕으로 탕! 탕! 탕! 한판 벌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참아본다.

출장 간 남편이 지금 올라오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내일 올 줄 알았는데 좋다 말았다. 고생하고 왔으니 오늘은 전우애를 발휘해 (해물이 들어간)탕에 대한 열망을 꾹 참고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골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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