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거 기억나니?”
아빠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새봄이가 처음 밖으로 나온 날 아빠가 사용법을 몰라 헤매고 있었던 카메라였다.
“한 번 봐 볼래?”
새봄이는 아빠의 카메라를 하나씩 넘겨보았다.
카메라에는 봄날의 펜션의 모습, 바비큐 장, 잔디밭 그리고 엄마 아빠 새봄이의 모습 등 흐릿하게 찍힌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때 흔들렸던 사진 안 지우고 갖고 계셨어요? 제대로 나온 사진이 몇 개 없겠어요.”
새봄이는 아빠의 서툰 카메라 솜씨를 보자 긴장이 좀 풀렸는지 살짝이 웃음이 났다.
“그렇지? 아빠가 사용법이 미숙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게 되니 좋네요.”
주변 온도와 다르게 따스한 봄날이 가득한 사진들.. 그렇게 카메라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처음엔 서툴러서 초점도 안 맞고 흔들렸지만 우리 딸에게 배우고 보니 제법 선명한 사진들도 나오더니 이제는 곧 잘 찍는 사진도 하나둘씩 나오더라. 마음이란 것도 그러지 않은가 싶다. 미숙했던 마음도 배우고 나면 달라지기도 하는 것처럼.. 너도 수십 번 고민은 해봤지만 그럴수록 잊히지 않고 더 선명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고마워요. 아빠.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새봄이는 결심한 듯이 아빠에게 카메라를 돌려주고 일어나 대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래, 길 미끄러우니 조심히 걸어가고”
“네.”
“이제 용기가 났을까?”
그런 새봄이를 보며 아빠는 혼잣말을 하며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를 짓고 남겨두었던 코코아를 마저 마신다.
대문을 열고 나가 동우와 약속했던 장소에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송사리를 잡던 냇가와 뛰어다니던 골목 사이사이... 그때의 따뜻했던 온도와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더니 그날처럼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오지 못 하는 거 알아....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지만..... 너와의 추억만큼은 잘 마무리하고 싶어..’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숨을 고르던 새봄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랐다.
화려한 꽃나무에 가려져 커다랗고 삐뚤빼뚤했던 나무가 예쁘게 다듬어져 있었고 화려한 조명과 장식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로 가장 예쁜 나무였다.
새봄이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더니
“크리스마스트리였구나. 이렇게 예쁘고 멋진 나무였다니..”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즐기고 있었고 밝은 빛과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로 차가운 공기는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와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게 되면 이제는 그 녀석을 보내줘야 했기에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만큼 반짝이는 트리라 이걸 보여주고 싶어 한 동우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봄이라 다른 나무들의 꽃들로 별거 없어 보이지만 겨울이 되면 이 나무가 여기서 제일 멋지고 예쁘다? 진짜야 내 말 믿어봐. 한번 와서 봐봐 내 말이 맞는지’
지난날 동우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예쁘다. 정말 너의 말대로 가장 멋진 나무야. 역시 너의 말이 옳았어..”
한동안 트리를 바라보던 새봄이의 마음은 애틋함과 쓸쓸함이 공존하였다.
밝은 빛에 가려진 어두움처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때 넌 무슨 마음으로 나를 대한 거였니? 너도 아팠으면서..’
새봄이는 자신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던 동우의 얼굴이 떠올라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저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새봄이는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잠시 동우의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봐 보니 동우의 형이었고 잠시 마나 기대했던 마음은 다시 실망이 가득했다.
“안녕? 나 기억하니?”
“네.”
“설마 올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정말 왔네.”
“그게 무슨.”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새봄이는 동우의 형을 따라 인근 카페에 들어갔고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는 머물렀던 흔적을 한 따뜻한 차가 있었다.
“앉아 있어.. 잠시만”
“네.”
동우의 형은 카운터에서 따뜻한 차를 주문해서 가져오더니 떨고 있는 새봄이에게 건네어 준다.
“춥지? 마셔... 아직 회복 중이라 마셔도 괜찮은가?”
“네.. 괜찮아요.”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차와 트리를 한번 보더니..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동우가 세상을 떠났어...”
“네, 들었어요.”
“그래 소식을 들었나 보네..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녀석... 꽤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고 있었어....”
동우의 형 말에 새봄이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워낙 티를 내지 않은 녀석이라... 처음엔 희망도 있었지... 더 이상 손 쓸 수 없다는 말에 약도 끊고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속 썩였던 일도 빈번했고... 그렇게 말도 안 듣던 애가 어느 날부터인가 다시 마음을 잡았는지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어... 그렇게 노력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었는지 나아지지 않더라고.. 하지만 그 녀석은 뭐가 좋은지 괜찮다고만 하더라. 그러고 집으로 와서 지내더니 자꾸 밖에 나가더라고... 아마 그게 널 만났을 때였던 거 같다... 어느 날은 물에 홀딱 젖어서 들어오지를 않나... 무리하면 안 되는데 뛰지를 않나... 자꾸 안 하던 행동들을 하는 거야.”
“죄송해요.”
“근데 그 녀석이 널 만나고 오는 날부터는 좀 좋았어. 밥도 잘 먹고 잘 웃고 말도 많이 하고. 그렇게 말 많은 애인지 몰랐을 정도야.”
“......”
“물론 돌발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어,”
“편지가 오는 날이면 그렇게 뛰지 말라고 해도 신나서 뛰고. 네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나는 혹시나 동우도 좀 좋아질 줄 알았어.”
“.........”
“그런데..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