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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Garden Aug 31. 2022

[속보] 퇴사라는 탈선, 인생 지연 중.

[속보] SRT 탈선, 열차 지연 중.

"[속보] SRT 탈선, 열차 지연 중"


지난달 1일(2022.07.01)에 여자 친구는 친구들과 여행을 위해서 대전행 SRT를 타러 갔다. 회사에서 SRT 역까지 거리가 멀고, 열차 시간까지 촉박해 내가 데려다 주기로 하고 픽업을 하러 갔다. 오후 6시 01분 그녀는 회사 정문에 나타나 내 차를 향해 달려왔다.


"어째?" 하며 보여준 휴대폰에는 '[속보] SRT 탈선, 열차 지연 중'이라는 뉴스가 보였다.


"일단 가보자." 여자 친구는 "대전 가는 버스가 있는지 확인해볼게."라는 말과 함께 SRT 역으로 달려갔다.


황급히 주차를 하고 역으로 들어가니 사고가 났음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탈 기차가 오지 않아 기다리는 승객들 북적거렸다. 에어컨 작동이 될 테지만, 많은 사람을 감당하긴 힘들었나 보다. 실내는 무척 더웠다.


더워진 실내를 데우는 승객들을 진정시키고자, 자주색 유니폼을 입으신 직원들은 보상에 대한 팜플랫과 부채를 나눠 주셨다. 그걸로 미지근한 바람을 내고 있으니, 방송이 나왔다. 방송의 요지는 늦게 온 기차이지만, 하행하시는 분들은 입석으로 타시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판단력이 빠른 여자 친구는 예약했던 버스를 취소하곤 1시간 내외니 대전까지는 서서 갈 수 있다며 이걸 타고 간다고 했다.


그녀를 기차에 태우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SRT 탈선한 기차가 지금의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속보] 퇴사라는 탈선, 인생 지연 중"

다들(?)하는 퇴사니 내가 한 퇴사가 특별한 일은 아니겠다. 다만, 다들 자신의 기찻길 위에서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탈선한 기차 같았다. 뉴스의 단신으로 "[속보] starry garden 탈선, 인생 지연 중"이라고 나올 것 같다. 거기다 퇴사의 시작이 비장한 각오라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 년 정도 하며 살겠다는 결심 정도였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박사학위를 받은 순간, 논문이 통과된 순간은 기뻤다. 그리고 그 선로는 미래가 보장돼있는 듯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정은 무척 힘들었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반면, 회사 생활에서는 내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긴 어려웠고, 정해진 시간에 나와 정해진 일을 하는 일의 반복일 뿐이었다. 완만한 경사로를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탈선한 지금은 매일 글을 쓰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다. 때때로 동생의 서점 겸 카페에 나와선 북큐레이터의 역할도 하고 있다. 매주 아버지, 어머니와 마주해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삶을 되짚어가고 있다. 부모님과 이렇게 긴 대화를 한 적이 있나 싶다. 지금까지 해온 일 중 가장 즐겁다. 돈이 된다기보다는 개인의 만족이 참 크다.


적다 보니, 사실 탈선한 게 아닌가 보다. 탈선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내 열차가 열차 분기기*로 들어가 선로를 바꾸고 있고 있을 뿐이었다. 분기기에 들어간 열차는 사고가 나지 않게 천천히 가는데, 이게 마치 인생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뉴스 제목을 바꿔야겠다. 속보는 떼고 "퇴사라는 분기기 진입, 인생 속도 조절 중."


*분기기: 철도에서 차량을 다른 선로로 옮길 수 있도록 선로가 갈리는 곳에 설치한 장치.




빠르던, 느리던, 어느 선로를 가던, 어디에 도착하던, 내 삶이다. 빠르다고 내게 적합한 도착지에 간다는 보장이 없다. 사회가 모두 인정한 선로라 하더라도 탈선이라는 사고가 날 수 있고, 사회에 흔치 않은 선로라도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간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될 수 도 있다.


모두들 자신만의 기찻길을 따라갈 뿐이다. 내 삶이 탈선되었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마 탈선이 아니라 인생 분기기에 들어선 건 아닐까? 그래서 천천히, 그래서 다른 이와는 다른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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