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문제가 뜨거웠던 적이 있다. "심심한 사과, 무운을 빌겠다, 금일이나 명일까지 부탁드립니다. 소설의 가제가 무언인가요? 사흘 뒤에 만나요." 나는 심심하지 않다. 운이 없다는 말인가? 금요일? 명일은 뭐야? 가제는 랍스터를 뜻하나? 사흘이면 4 일 뒤인가?
읽는 이기도 하고, 쓰는 이기도 하니 마음이 여럿이다. 쓰는 사람으로는 중국 글과 말을 피해 이해하기 쉽게 쓰는 일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커지고, 읽는 이 입장에서는 사전을 찾고 사유하는 힘을 기른다면 문제가 없는 일 아닐까?라는 생각도 부유한다. 내 안에서도 다른 생각이 떠도니, 다른 이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요즘 세대를 MZ라고 싸잡아 묶은 다음, 문제라고 혀를 차고, MZ는 비난하는 이들을 꼰대라고 동여매고 난 뒤, 손가락질한다. 우선 청년 세대를 하나의 현상만을 가지고 비난하는 일을 멈추어보자. 청년 세대도 앞에 서있는 세대에 좋지 않은 소리를 하지 않고 바라보자.
"요즘 작가들은 풀이름, 나무 이름을 너무 모른다고"한 고 박완서 작가님의 타박을 듣던 다른 작가님이 "우리가 식물 이름을 잘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 대신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모카, 바닐라 라테처럼 기성 작가들이 나무 이름 아는 만큼 커피 이름을 안다"는 이야기처럼, 서로 사이에 있는 틈을 인정하고 보자.
우선 문해력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조금은 어렵게 이야기해 볼까? 한양대학교 조병영 국어교육과 교수는 "문해력에 해당하는 서구의 리터러시 연구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문장 안에 들어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책에 있는 정보와 나의 지식을 통합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상하다. 앞서 지적한 문해력 문제와 문해력의 정의와는 다르다.
문해력이라 큰 단어 아래에 어휘력, 맞춤법이 약간은 섞여있다. 조병영 교수가 말한 뜻과 사전을 섞어 조금 가볍게 만들어보면, "글을 읽고 내 지식과 얻은 정보를 통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이해하는 능력"이 문해력이라고 하겠다.
그럼 문해력이 낮아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리고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이 무엇일까? 문해력이 낮았지만,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의 문제로 확장된다고 한다. 단순히 단어 몇 개를 모르고, 맞춤법을 틀리는 문제를 넘어선다. 편향되고 조각된 정보만을 받아 드리고, 해석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정보를 모아, 자신의 의견을 만들지 못하고, 큰소리가 나는 파편화된 정보로 따라가기만 한다. 사유를 잃어버린 사회가 된다고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잘못된 판단으로 흘러갈 위험이 커진다. 그럼, 문해력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19년 동안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신 분은 "독서를 연계해 학생들이 단락 하나를 보더라도 제대로 보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면 극복이 가능하리라 말한다. 단순히 혼자 읽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문장을 마음에서 돌돌 굴리고 있으니, 독서모임이 보인다. 바로 문해력을 키우는 장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을 1년 동안하고 있다. 매주 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해력은 전 보다 좋아졌을까? 올해 110권의 책을 읽었고, 매주 책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며, 글은 300편 남짓 썼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책도, 글도 읽고 나면 나만의 생각이 생겨난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책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을 짚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가끔 내가 잘못 읽고 잘못 해석하고 있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읽은 책을 다시 읽어 의미를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필사를 해놓고 곰곰이 사유를 하기도 한다. 그때, 책에서 오는 생각과 내 생각이 만나 새로운 방향으로 안내한다. 국어교육과 교수님과 중학생을 가르치는 분들의 말씀의 종합판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우리 독서모임이 문해력을 올리는 과정을 짧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다.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다. 대화를 하다 보면,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다. 때론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책이라는 권위에 눌리지 않고 나만의 견해를 가지는 과정이다. 이때, 밑줄을 긋거나, 태그로 표시를 한다. 다음은 문장을 옮겨 적고, 내 생각을 적는다. 독서노트가 활용된다. 부유하는 생각을 잡기 좋고, 문장을 필사하며 느리게 다시 읽게 된다. 마지막은 대화다. 책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럼 응답이 돌아온다. 주고받는 과정이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고, 또 다른 생각을 짚어내는 과정이 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글을 쓴다. 서평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글감으로 완전히 다른 글이 되기도 한다.
읽기 -> 스스로 질문하기 -> 필사하기 -> 책 친구와 대화 나누기. -> 글쓰기.
문해력 논란이 있을 때마다 특정 세대를 비난하는 일로는 변화할 수 없다. 단지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방법은 결국 읽고,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힘은 비판만으로는 커지지 않는다. 책이라는 매체가 점점 사그라들 고 있는 지금 이런 주장이 거대한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달걀을 하나 던져본다. 맞다고 믿는다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계속 되풀이하면 누군가는 함께 말해줄 테니. 문해력을 높이리 위해서는 글을 읽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내어놓아야 한다. 전국 어디에선가 작은 독서모임이 열려 문해력이 올라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