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책방 시상식.
1년 독서 모임. 책 시상식을 거행합니다.
독서모임인 심야책방이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커피문고에서 처음 시도한 독서모임의 시작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떤 분들이 오실지, 다음 달 아니 다음 주에는 모임이 지속될지 걱정되었다. 나만 느낀 감정은 아닌 모양이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낯선 이를 만나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처음 한 독서모임은 상상한 만큼 멋졌고, 책에 진심한 이들을 만나 즐거웠다 (혹시 첫 독서모임이 궁금하시다면? <내 생애 최초의 독서모임>). 매주 한 번 2시간 이상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책 읽기를 독려하며, 일주일 중 하루 온전히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서가 혼자 읽는 즐거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임이 되었다.
1년을 축하하고, 우린 심야책방 시상식을 하기도 예고했다. 지금까지 읽을 책들을 톺아 보며 어떤 책이 좋았는지, 또 어떤 책이 읽기가 버거웠는지 골랐다. 쉽지 않았다. 3 주의 시간이 흐른 뒤, 시상식이 열였다. 우린 무슨 책을 가져왔을까? 이유는 무엇일까?
책 친구 1
2023년 최고 소설.
<레몬>, 권여선 지음. 창비.
2023년 가장 빠르게 읽은 책이다.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망각이라는 능력에 빨리 레몬의 내용만 앗아가길 기다린다. 레몬에 대한 재밌던 감정만 남고 내용을 잊었을 때, 다시 읽고 싶다. 처음 읽었던 감동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
2023년 최고 에세이.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내 일상>, Starry garden 지음. 하모니북.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출간한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경험. 다른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책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 글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공간이 책 속에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2023년 읽기 어려웠던 책.
<흰>, 한강 지음. 문학동네.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충분히 독서하는 힘이 갖춰진 뒤에야 마음에 닿는 글이 될 것 같다.
책친구 2
2023년 최고 소설.
<만조를 기다리며>, 조예은 지음. 위픽.
흡입력이 대단하다. 영화처럼 눈앞에 장면이 그려졌다. 후루룩 읽히는 국수아이템이다. 긴장감에 책을 중간에 놓을 수 없었다. 마지막 부분에 도착해서는 질문을 하나 남겼다. 한 번 더 읽으며 영상을 머리에 그리고 싶다.
2023년 최고 인문.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인문학 책이 국수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책. 가끔 허무를 느끼는 나에게 힌트를 주는 책. 삶의 허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책. 허무가 발끝을 타고 올라온다면, 이 책이 날 구할 것이다.
2023년 읽기 어려웠던 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복복 서가
소설은 선명한 묘사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 마디로 하자면, 날 것.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그려지니, 얼굴이 가끔 구겨졌다. 끝까지 읽었지만, 힘들었다.
커피문고 대표
2023년 최고 소설.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레제.
단편 소설집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한 책이다. 한 편 한 편 상상과 생각의 여지가 있었다. 이야기 마지막이 열려 있어 좋았다. 짧은 단편이지만 강한 힘을 느꼈다. 소설 단편집의 매력에 빠져 단편집을 찾아다닌다.
2023년 최고 에세이.
<불안 한 톳>, 이택민 지음. 책편사
책이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게 한다. 다만, 불안 깊게 사유하는 이와 함께 걷는 느낌이다. 저자가 겪은 감정과 동기화되어 위로가 된다. 나만 홀로 불안하지 않구나.
2023년 읽기 어려웠던 책.
<2023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김멜라, 성혜령, 이서수, 정선임, 함윤이, 현호정 지음. 문학동네
작가들이 펼쳐 놓은 세계를 모두 짚어내지 못했다. 때때로 어려웠고, 때때로 버거웠다. 책을 꾸준히 읽은 뒤, 다시 만난 다면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다 살필 수 있을까?
<지난 글을 편집했습니다.>
2023년 최고 소설.
<순례 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순례주택은 경쾌한 문장으로 책을 계속 넘기게 했다. 아직은 어른이 필요한 어른인 내가 스스로 살려고 애쓰는지 생각하게 된다. 묵직한 질문은 인생이라는 길을 잃었을 때, 애쓰는 나를 위로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책이다.
2023년 최고 인문, 사회.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번역, 어크로스.
도둑맞은 집중력은 집중하지 못한 이유를 전한다. 온전히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집중력을 강탈해 간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오는 방법을 제시한다. 집중력을 잃어버려 힘든 분들에게 길이 되어 줄 책이다.
2023년 읽기 어려웠던 책.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번역
장미의 이름은 두께로 압도한다. 여백도 없고 작은 글씨에 어렵다. 등장인물의 입에서는 중세 시대의 철학적 논쟁이 쏟아진다. 아직 철학을 이해하는 힘도, 독서의 힘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른 뒤 읽게 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올까?
1년이 마무리되었다. 2024년에는 어떤 책들이 우리 모임을 기다릴까? 기대된다. 그때 우리 책 친구들은 어떤 책을 뽑고 시상식을 하게 될까? 올해도 읽고, 고민하며 책을 뽑아 보려고 한다.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버거운 일이 왔을 때, 풀어낼 지혜가 있길, 이겨낼 용기가 있길, 멈추지 않을 단단함이 있길 기원할 뿐이다.
내년 시상식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심야책방 책 시상식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