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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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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Sep 13. 2024

저녁 수영


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배운다. 방학 특강으로 아침 수영을 하다가 개학 후에는 저녁 수영을 하고 있다. 물을 무서워하던 딸이 수영 가는 날만 기다리는 게 신기하다. 혼자 수영복을 갈아입고 열심히 수영을 하고 뽀얀 얼굴로 나올 때마다 아이가 그새 얼마나 자랐는지 실감하곤 한다. 빵 하나를 사서 와구와구 먹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이런 게 어려웠고, 다음 주에 새로 배울 동작이 기대된다며 조잘거린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둠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다.


나는 수영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한다.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공부를 이유로 4학년 즈음 울면서 그만뒀다. 미술을 배워보고 싶었으나 학원은 꿈도 못 꿨다. 세상엔 영어와 수학 학원만 있는 줄 알았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뒤늦게 하나씩 배울 때마다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에 해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내 삶은 좀 더 즐겁고 풍성했을 것이다. 딸은 나와 달랐으면 했다. 호기심을 갖고 다양하게 배워보길 바랐다. 그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물속에서 새로운 느낌을 경험해 보는 것. 자유롭게 헤엄치다 보면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이 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수영장 밖에서 아이를 지켜보다 보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너무 잘 보인다. 오늘은 킥이 잘 안 되는구나 싶으면 온 힘을 다해 발차기를 연습하고, 팔이 어색하다 싶으면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선생님과 작은 디테일을 잡아가며 물 위에 뜨는 감각과 자세에 집중한다. 물의 저항에 맞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안 한다고 한지 모르겠어. 일단 해봐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 말이야.”

처음으로 수영수업을 받고 나온 아이가 했던 말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스스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을 기다려주고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 주면 아이들은 날개단 듯 순식간에 날아오른다. 딸이 마치 스펀지처럼 많은 것을 흡수하며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수영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구경 온 할아버지, 할머니, 언니와 오빠, 동생들까지.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과 새로 들어가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기특한 눈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무섭다고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거나 혼을 내는 부모도 있다. 수영장 안 역시 다르지 않다. 같은 레인, 같은 선생님이라도 수영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잘하는 친구 앞에서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 들거나, 아무리 연습해도 잘 되지 않을 때는 속상하고 답답하다. 망설임과 주저함,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곳.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답답한 마음이 공존하는 공간인 것이다.


시작이 서툴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아이들은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 자신에게 맞는 자세와 감을 찾아낸다. 그 과정들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파란 수영장의 물, 경쾌하게 찰랑이는 물소리, 알싸한 소독약 냄새, 천장을 타고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까지. 수영장 밖에 앉아 있으면 생생한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글을 쓰며 수많은 실패를 하는 중이다. 매번 우는 소리를 하고, 쓰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투고원고를 완성하겠다며 불타오르다가도 집안일과 아이 교육 앞에서 엄마로 돌아온다. 내 꿈은 가벼운 풍선처럼 멀리 날아가버린다. 그래도 멈추고 싶진 않았다. 수영장 한편에서 글을 쓰며 매번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내는 태도에 대해.


언젠가 엉엉 울며 물속에 들어가지도 못하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수영 따위 너무 싫고 무섭다고 했다. 2주쯤 지나자 호흡법을 배우고 보조기구에 의지해 둥실 뜨기 시작했다. 오늘은 선생님과 함께 발차기를 하며 엄마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예상치 못한 순간 발견하게 되는 삶의 진짜 모습들.  SNS 속 완벽히 세팅된 모습이 아닌, 실패하고 넘어지고, 짜증 내고 화내는 모습들이 진짜라는 걸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속도가 있다. 그러니 자꾸 넘어져도 나 역시 뭐든 쓰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딸이 보조기구를 모두 떼고 팔을 벌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발차기에 힘이 붙고 팔모양도 자연스럽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자유롭게 헤엄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뭉클해진다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를 배워가고 있고 나는 그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수영장 밖의 내 앞에는 몇 개의 글이 쌓일까. 어떤 이야기를 쓰며 나의 틀을 깨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저녁 수영을 지켜보며 써나갈 나의 글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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