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단연 진밥파다. 어렸을 때도 꼬들꼬들이라는 말의 뜻은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그 말을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대신 밖에서 고슬거리는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삭막한 무엇은 있었다. 밥알 한 알 한 알이 나를 밀어내는 듯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감각. 밥물을 딱 맞추어 지은 밥은 정성과 환대의 의미에 가까울 텐데, 그 칼 같은 예의가 나에게는 오히려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항상 집밥을 그리워했다. 찹쌀처럼 찰기가 있는 윤기 흐르는 쌀알. 입에 넣고 씹을 때의 쫀득쫀득한 식감. 살짝 식으면 밥공기에 찰떡처럼 달라붙고, 씹으면 씹을수록 감미로운 단맛이 배어나온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탓에 혼자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춘기때, 밥이 동나 있는 날이면 쌀을 넉넉하게 붓고 손등 위까지 얼추 물을 맞추곤 했다. 밥물을 맞추는 건 경험과 본능이 치열하게 맞붙어 빚어내는 화학식이라 구슬픈 얼굴로 딱딱한 밥알을 씹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딱 한 번 완벽한 진밥을 해냈을 때의 희열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향기로운 분무 같은 증기가 얼굴을 화악 감싸면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도 진밥의 탄생을 예감할 수 있다. 냉큼 속이 깊은 대접에 밥을 푸고 반찬거리를 꺼낸다. 한 가족이 먹을 분량이었지만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카레, 엄마의 직장 근처 식당에서 받아온 살코기 가득한 감자탕, 통통한 다리 하나만으로도 밥 반공기는 뚝딱 비울 수 있는 낙지젓갈. 잘 먹겠다는 인사도 없이 황급히 젓가락을 집어들 때 식탁에는 나 혼자뿐이었지만 마음은 더없이 충만했다.
진밥 성공률이 99퍼센트에 육박한 지금까지도 세상의 옹호는 다수가 사랑하는 고들밥에 머무른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한곳에서 진밥의 이름을 불러본다. 빈틈 하나 없이 모두와 두런두런 잘 지내는 고들밥에 비하면 어쩐지 어수룩하고 좀 덜떨어진, 그래서 마음이 쓰이고 정이 가는 친구 같은 진밥. 생선살이든 나물이든 육즙 흐르는 고깃점이든 차별 않고 포용하는, 마음이 넉넉하고 품이 따스한 진밥.
어쩌면 진밥을 사랑하는 자들은 기실 살아가는 모습이 진밥과 닮은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진밥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등 뒤의 밥솥에서 증기가 솟구치는 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주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