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난 ‘시장 예찬자’ 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듯이 시장을 보면 꼭 들르고 싶은 마음에 몸살을 앓는다. 몸 호강을 하기 위해 호캉스를 가서도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거기로 의식이 쏠릴 정도다. 매콤달콤한 떡볶이와 꼬치에 꿰인 어묵, 페트병에 담긴 살얼음 낀 호박식혜, 구수한 냄새와 감칠맛과 비린내 섞인 답답한 공기 따위를 상상하면 마음이 절로 주체할 수 없이 들뜬다.
군침 도는 먹거리가 가득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을 찬양하는 건 물론 아니다. 시장의 매력은 골목마다 손에 잡힐 듯 흘러넘치는 싱싱하고 명랑한 삶의 에너지에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구성지고 우렁찬 호객소리. 땅땅땅, 네모진 칼을 휘둘러 팔뚝만한 생선을 단숨에 토막치는 어물전 장수의 노련함. 냄비 틈으로 솟구치는 김과 그 사이로 보이는 알이 꽉 들어찬 노란 찰옥수수. 할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엄지를 빠는 빨간 땡땡이무늬 치마의 다섯 살배기 아이… 온갖 신바람 나는 삶의 증거들로 흥청대는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 걸음걸이도 춤추는 듯하다.
한동안 일에 정신이 팔려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 나들이를 못 가고 있던 차에 엄마로부터 날아온 무거운 화분을 들어 달라는 SOS 신호. 무슨 일인고 하니, 그동안 키우던 화분들이 다 말라버려서 시장 꽃집에 가 뉴페이스를 들여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혈중 시장 농도가 부족해지던 참인데 마침 잘됐다. 냉큼 따라나서 양손도 가슴도 묵직하고 충만해진 채로 돌아왔다.
산 것들의 목록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 로즈마리로 추정되는 허브 화분 하나. 아기 머리칼 쓸듯이 잎을 쓰다듬으면 향긋한 풀내음이 손바닥에 스민다. 대자 닭강정 한 박스. 우리가 늘 사는 집의 맞은편에 닭강정집이 하나 더 있는데, 원래는 떡갈비를 팔던 집이다. 잘되는 맞은편 집을 따라 업종을 바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늘 가던 데로만 간다. 주문하면 즉각 튀겨내어 매콤한 소스를 묻히고, 약간 눅눅한 상자 뚜껑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가득 담아주는 곳으로. 함께 외출하는 김에 애교를 부려 얻어낸 골드키위 한 봉지.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썰어서 무가당 요거트에 말아 먹을 참이다. 마지막으로 닭강정 곁에 빠지면 섭섭한 제로콜라 두 캔까지.
나는 양념을 덜 묻힌 쪽, 언니는 듬뿍 묻힌 쪽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있는데 욕실에서 나온 엄마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저 화분은 앞으로 네가 물 줘라.”
허걱. 잎에서 배어나오는 향에 홀려 물 주기 번거롭다는 말도 귓등으로 듣고서 저걸 사자고 밀어붙인 대가다. 어릴 때 키우던 선인장조차 말라죽인 전적이 있는 나인데… 엄마는 출근하니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저 녀석도 꼼짝없이 죽고 말 것이다. 시장 나들이 한 번에 덜컥 생명 하나를 책임지게 생겼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핸드폰을 켜고 새로운 알람을 맞춘다. 매주 월수금, 컵 한 잔에 물 가득 담아 산발이한테 주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