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현대인을 위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
이 그림은 김환기가 뉴욕에서 지내던 시절인 1970년,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던 시인 김광섭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너무나도 큰 실의에 빠져 그린 점화입니다. 김광섭에게 헌정하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 뒤 이 작품은 서울로 보내져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김환기는 뉴욕에서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났다는 김환기의 고통은 온통 점만으로 표현됩니다.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점을 찍고 못 견디게 그리운 고향 생각에 점을 찍고...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어떻게든 해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무수한 시간들...
밤하늘의 별처럼 검푸른 점들이 빼곡히 가득 찬 그의 작품은 그렇게 탄생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도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성에서 중동학교를 다니다 중퇴, 1933년 일본 니혼대학에 입학, 1937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합니다. 그림의 소재와 영감을 찾아 일본,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서 두루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고향, 가족, 친구를 향한 그리움으로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떠올리며 그리운 이들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가며 절제하였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의 유명한 점화기법입니다. 김환기 추상미술의 완성은 이렇듯 단색톤의 무수히 많은 점과 선으로 구성됩니다. 2019년 김환기의 작품 중 <우주>는 한국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되어 각 언론사의 신문을 도배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뉴욕에서 이 그림을 그릴 때 김환기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1973년 2월 19일, 올해 처음으로 큰 캔버스를 시작하다 1973년 3월 11일, 근 20일 만에 307번을 끝내다. 이번 작품처럼 고된 적이 없다. 종일 안개비 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