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툴루즈 로트렉의 <세탁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그림 속 붉은 머리의 여자는 세탁부입니다. 일을 하던 중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듯합니다. 소매를 걷어 올린 그녀의 팔과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굽은 등과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올린 뒷머리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헝클어져 내려온 앞머리에 가려진 그녀의 옆얼굴은 고단해 보이고, 쓸쓸해 보입니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달라질 것이 없는 반복되는 일상...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그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을 테지요.
우리의 인생은 시간이 흐르며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요? 쳇바퀴 돌듯 매일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삶은 늘 만족스럽지 못하고,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상실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만약 그림 속의 그녀가 옆에 있다면, 아무 말없이 가만히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것입니다. 아니, 살아낼 것입니다.
아름답고 강인하게...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치고 힘들 때면 푸쉬킨의 시 한 구절과 로틀렉의 그림 한 점이 잠시라도…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Lautrec]
프랑스의 화가, 드가와 인상파, 풍속판화 등의 영향을 받아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던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로트렉은 프랑스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14살 때 왼쪽다리의 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고, 몇 달 뒤 오른쪽 다리마저 골절상을 입어 그 뒤로 성장이 멈추고 맙니다. 작은 골절 사고에도 발육이 정지되는 것은 당시 부모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농축이골증이라는 유전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150CM 정도로 키가 멈추었습니다.
로트렉은 비록 알코올 중독과 신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37살에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으며 그 누구보다 위대한 아티스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