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심한다, 고로...
누구나 비밀은 있다. 비밀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도 공개하지 못할 비밀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타인을 완벽히 알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본다면 인간관계의 연결망은 온갖 불확실한 추측과 의심이 난무하는, 무용한 정보의 집합소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한 타인'으로만 가득한 곳일지도 모른다.
영화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은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Perfect Strangers)'를 각색해 한국의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완벽(해 보이는 듯)한 반쪽'을 순식간에 생판 모르는 '완벽한 타인'으로 바꾸는 불씨는 스마트폰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분신이 되어 버린 스마트폰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화약고다. 메시지, 이메일, 전화 등 스마트폰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은 발가벗은 채로 남 앞에 서는 일과 같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예측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극적 장치들을 무작위로 내놓는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덕분에 이 영화는 빌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월식이 있는 하루 저녁 동안 펼쳐지는 눈치 싸움과 입씨름만으로도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 낸다.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연극적인 영화로 각인될 가능성도 컸지만, 촬영과 편집이 돋보이는 몇몇 장면들을 배치해 영화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완벽한 타인> 원작의 영어 제목은 'Perfect Strangers'다. 반면에 <완벽한 타인>의 영어 제목은 'Intimate Strangers'다. 영단어 'intimate'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흔히 성생활과 관련된) 사적인[은밀한]'이다. 영화 초반, 섹스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장면들은 뒤에 일어날 사건들의 복선이나 원인이 되며 실제로 '스마트폰 공개 게임'이 시작된 후 발생하는 오해와 언쟁은 모두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성생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본능을 계속 자극하면서, 이야기를 얽히고설키게 만들어 긴장과 이완을 유도한다.
누구나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면서,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 속인다. 타인도 나처럼 다른 사람과 자신을 속이며 살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니 타인을 항상 의심하게 된다. 의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면, 의심은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호복이 될 수 있다. 나와 타인 사이에 필요한 간격을 형성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평범한 인간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부제로 떠오른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