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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Dec 03. 2017

선과 악, 그 경계에 멈춰선 열차

Appetizer#109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시네마피아' 양기자가 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평점은?


셜록 홈즈만 알던 시절, 선물 받은『쥐덫』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당시, 책을 거의 읽지 않았음에도(교과서를 제외하면 1년에 5권을 채 읽지 않았다.), 눈 오는 날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한참을 빠져 지냈다. 그게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와의 첫 만남이다. 정말 많은 추리 소설을 남겼던 작가, 여성 최초의 영국 추리협회 회장(1967년), 영국 여왕에게 작위를 받은 작가 등 그녀를 수식할 수 있는 위대한 단어는 무척 많다.


『쥐덫』 외에도 읽었던 몇 편의 작품 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있었다. 덕분에 원작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친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설렘을 가졌다. 이 원작을 영화로 만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기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눈에 파묻혀 고립된 기차, 그리고 고립된 객실에서 일어난 살인.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 탐정 ‘에르큘 포와로’(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중 30여 개의 장편 및 50여 개의 단편에 등장했다.)가 나선다.



잘 구현된 옛 열차와 인물들의 의상만으로도 영화가 원작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추구하는 영상도 고전적이다. 최근 영화가 추구하는 빠른 컷 전환을 통한 긴박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에르큘 포와로가 사건에 얽힌 인물들과 대화하며, 단서를 찾고 사건에 얽힌 정보를 알아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많은 인물이 등장해 정신없을 법한데도, 영화 속 카메라는 에르큘 포와로처럼 차분히 움직인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살인에 쓰인 트릭 보다는 범인의 정체와 살인의 사연에 더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영화의 주요 장면은 질문과 대답, 취조의 연속이다. 물론, 이런 느리고 정적인 전개는 ‘지루함’이라는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하지만 원작의 재현이라는 점에서는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이란 특성 덕에,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포스터에서부터 알 수 있는 아카데미 후보 및 수상 경력을 지닌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케네스 브레너,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대포, 주디 덴치, 조니 뎁 등은 그들의 존재감만으로도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배우들이다.



원작의 플롯을 충실히 이미지로 옮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던 미장센은 영화의 배경이다.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되는 눈 덮인 ‘다리’는 에르큘 포와로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다리 위 중간에 멈춰선 열차는 ‘선과 악’ 사이, 어디쯤에서 고민하는 인물들과 그들을 심판하는 에르큘 포와로의 심리를 표현한다. 그리고 멈춰버린 기차는 살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시간 역시 멈춰 있다는 걸 표현한다. 그들의 고민에 동참하고 싶다면, 지금이 오리엔트 열차에 탑승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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