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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30. 2018

[12 솔져스] 결국, 미국이 기억하는 또 하나의 신화

Appetizer#113 12 솔져스


21세기는 테러와 함께 시작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충격적이었던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는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 이정표였다. 그날 이후부터 미국의 중동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20여 년 가까이 지나면서 많은 성과와 실패가 알려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을 시점(대략 2000년대 후반)부터 영화도 이 전쟁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군인의 용기와 희생을 담은 영화,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영화 등 다양한 성격의 작품이 스크린에 올랐다.


이번에 개봉하는 <12 솔져스>는 9.11 테러 직후 실제로 있었던 11일간의 비공식 작전을 소재로 한다. 국가를 위해 이 작전에 참여한 미치 넬슨(크리스 헴스워스) 외 11명의 군인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단, 12명으로 5만 명의 적군이 있는 적진으로 들어갔는데, 생존 확률 0%의 전장에 뛰어든 셈이다. 영화는 이런 확률 속에서 목숨을 걸었던 군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12 솔져스>에서 이들은 최전방에서, 가장 먼저 임무를 맡고 싶어 하는 군인으로 표현된다. 전쟁은 두렵지만, 그들은 가족과 국가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선다. 9.11 테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위해 총을 들었다. 이런 군인의 의무감 외에 두드러지는 감정은 ‘분노’다. 이 분노 앞에 전쟁 자체에 관한 가치 판단은 생략된다. <12 솔져스>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필요한 작전, 그리고 해내야 하는 전쟁으로 미국의 과거를 기억한다.


12명이 보여준 군인으로서의 자세는 숭고했고, 그들의 업적은 후세가 존경을 보낼 만하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가 이런 신화를 재현하고 싶은 욕망도 당연해 보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12 솔져스>는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들의 비범한 군인 정신을 담아냈다. 시간제한이 있던 당시의 긴박한 상황도 흥미롭게 재현해냈다. 빠른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리고 전쟁영화답게 동료 간의 의리도 맛깔나게 표현했다.



하지만, 영화라면 뭔가 더 표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레전드가 된 작전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고, 관객을 생각하게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9.11 이후의 전쟁을 다룬 수작들을 보면, <12 솔져스>의 한계가 보인다.


<제로 다크 서티>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긴 여정을 밀도 있게, 그리고 긴박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이 더 매력적인 건 주인공 마야(제시카 차스테인)가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전쟁 속에 방황하는 미국인들의 초상을 보여줬다는 데 있었다.



또 다른 명작 중 하나인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최고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이 전쟁을 겪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표현했다. 이런 영화들은 작전을 넘어, 전쟁으로 망가진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전쟁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런 영화들과 비교해 <12 솔져스>는 영웅담,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사한 배경과 고립된 군인들의 상황은 2013년 개봉한 <론 서바이버>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12 솔져스>가 <론 서바이버>의 긴박함과 몰입감을 따라갈 수는 없을 같다. 다만, 아이맥스 상영을 할 만큼 시각적 요소에서 장점이 있는 영화다. <12 솔져스>의 전장은 광활하고, 탁 트인 지대가 주는 시원스러운 느낌이 있다.



그 외에도 크리스 헴스워스의 낯선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최근 주로 힘만 쓰던 ‘토르’, 혹은 <고스트버스터즈>에서 코믹함이 충만했던 비서 등을 맡으며 유쾌한 모습을 연기했다. 이번에 맡은 미치 넬슨 역은 인간적이고, 진중하며, 고뇌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크리스 헴스워스의 낯선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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