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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13. 2019

[1987] 광장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01화. 2018년 겨울, 첫 번째 - <1987>

About Movie. <1987>
<지구를 지켜라>, <화이>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 작품으로 1987년 있었던 한 대학생의 죽음에서 6월 항쟁까지의 시간을 담았다. 영화는 고문치사 사건 및 시민을 억압하는 공권력 등을 통해 당대 정권 및 시대의 폭력적인 분위기를 표현한다. 두 학생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 공안실에 갇힌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분 대상을 비롯해 남자 최우수 연기상(김윤석) 등을 받았고, 그 외 다수의 시상식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키노라이츠 지수는 96.7%를 기록 중이다.


<1987>은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영화였다. 많은 비평가가 말한 이 영화의 높은 밀도와 몰입감은 <1987>을 1987년 그 자체로 보이게 한다. 거의 매진인 영화관에서 <1987>을 보며, 객석이 웅성거리는 걸 두 번 목격했다. 한 번은 극 중 강동원이 복면을 벗을 때, 영화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관객들이 보인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1987년 이한열 열사가 그 시대의 빛이었듯, 강동원은 영화 속에서도 빛이었다.


두 번째 반응은 마지막 광장 장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날이 오면’이 흘러나올 때, 많은 관객이 훌쩍이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옆에 있던 중년 관객은 짧은 탄식을 뱉기도 했다. 그 시대를 목격했던 관객이었을 테고, <1987>을 영화로만 바라볼 수 없는 분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겪지 못한 못했던 내게도 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 광장이 15년 전, 다른 이유로 용광로가 되어 끓고 있었다. 그 괴리감에 나 홀로 비명을 지르며 스크린을 응시해야 했다. 이처럼 <1987> 엔딩의 이미지는 무척 파괴적이다.


<1987>은 연희(김태리)가 광장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문을 닫는 영화다. 하지만, 1987년의 역사는 그 광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민주주의를 향해 뛰었다. 그래서 <1987>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광장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글은 영화에 관한 짧은 이야기로 시작해 광장에 관한 몇 가지 기억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기억이란 사적 영역으로 이어지는 글이기에 ‘영화’에 관한 글이 아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거기에 다수의 추측을 중심으로 진행된 글이기에 문제가 많은 글이 될 것만 같다. 이 불안감을 안고서 광장으로 내달려본다.



안정적인 연출의 중심에 있던 진실

모두가 진실의 조력자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강동원…. <1987>엔 로 영화를 끌어갈 힘이 있는 배우들이 다수 모였다. 그런 이들을 한 영화에서 모두 볼 수 있다는 건 관객들에겐 무척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 넘치는 매력을 한 영화에 담는 건 꽤 고역이다. 가까운 예로 18년 연말, 기대를 모았던 <마약왕>의 화려한 캐스팅은 오히려 비수가 되어 꽂혔다. 많은 걸 보여주려다 서사가 산만해지고, 영화는 비대해졌으며, 결국 무너져 내렸다. 배우는 빛났지만, 영화가 빛을 잃은 사례다.


<1987>은 이런 위험을 어떻게 피해갔을까. 이 영화는 명확한 중심과 목표를 잡아 흔들리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있고, 이는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주인공이다. 영화는 ‘진실이 정권을 무너뜨릴 것’, ‘진실은 가둘 수 없다’ 등을 직접 말하며, 이 주인공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한다. <1987>은 공안부에 갇혀 있던 ‘진실’이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물 밖을 나온 진실이 공안부와 감옥을 거쳐 시민이 기다리고 있는 광장으로 가는 과정이 펼쳐지며, 영화의 모든 인물은 이 진실 앞에서 조력자가 된다. 많은 배우가 제 역할을 하면서도 단 하나의 주인공을 빛나게 했기에, <1987>은 빛날 수 있었다.


그런데 관객이 모두 다 아는 그 진실은 <1987>의 가장 후반부에야 스크린에 소환된다. 실체가 없던 주인공이 얼굴을 드러내는 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부분으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박종철(여진구)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이 시선은 스크린 반대쪽의 관객에게 향하고, 관객은 그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켜봐야만 한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의 온도가 가장 뜨거운 순간, 바라보기 힘든 진실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말하고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국가가 만든 괴물과 첩보 장르

<1987>은 명확한 안타고니스트도 설정해둔다. 영화에서 두 번째로 비중이 큰 인물은 박처장(김윤석)이다. 그는 ‘애국’과 ‘빨갱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눈다. 그에게 고문치사 진실의 공개는 정권에 위험이 되기에, 애국자로서 막아야 한다. 그래서 박처장에겐 거짓이 선이며, 진실이 악이다. 더불어, 영화는 이 인물을 단순한 악인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이념 대립으로 가족이 피를 봤던 과거사를 통해 당위성을 부여한다. 박처장은 그의 경험이자 우리 역사의 비극에서 익힌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그는 역사와 이념이 낳은 괴물이다. 그렇게 박처장은 당대 정권을 대표하고, ‘진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안타고니스트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1987>은 ‘진실’의 흐름에 따라 주요 무대가 바뀌고, 이를 전달하는 인물도 바뀐다. 그런데 이를 막는 건 언제나 박처장이다. 즉, 그는 공안부장(하정우), 한병용(유해진), 연희 등의 공통적인 장애물이다. 이런 진실의 탈출시키려는 자와 진실을 가두려는 의 구도가 잘 잡혀있는 덕분에 영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일관성이 있으며, 긴장감도 유지될 수 있다.

박처장과의 선명한 대립 구도 속에 <1987>은 첩보물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도한다. <1987>은 숨겨진 비밀(진실)을 빼내서 옮기는 영화다. 화장실에 숨어서 정보원과 접촉하는 기자, 동료의 눈을 따돌려 정보를 넘기는 검사, 잡지에 정보를 숨겨 전달하는 간수까지 정보의 이동이 첩보 영화의 그것처럼 펼쳐진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요소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한다. <1987>은 묵직하고도 쓰린 소재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상업 영화의 기능(장르적 재미)까지 충실히 해냈다.



연희가 도착 한 곳

이 영화에서 연희의 역할은 복합적이다. 그녀는 <1987>의 주요 사건을 관통하는 인물이며,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력자인 동시에, 마지막엔 관객의  되기도 한다. 무려, 영화 상영 이후 50분이 지나서 등장함에도 이 모든 걸 해냈다. 우선, 연희는 정보의 전달자로 출발한다. 감옥에서 나온 진실을 세상에 전하는 통로이며, 영화에선 ‘박종철’과 ‘이한열’을 연결하는 이음새 역할을 한다. 이때 그녀는 ‘데모’를 증오하고, ‘마이마이’와 미팅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또한, ‘세상은 그런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소시민이었다.


그런 연희는 변한다. 이한열(강동원)을 만나 폭력적인 공권력에 쫓기고, 그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참혹한 진실과 세상의 민낯을 본다. 그리고 삼촌이 공안부에 끌려가고, 그녀는 납치되어 벌판에 버려지면서 세상의 부조리를 직접 체험했다. 이런 경험들이 그녀를 끓게 했고, 광장으로 달려가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는 걸 본다. 연희는 <1987>에서 가장 큰 성격의 변화를 보이는 입체적인 인물이며, 그녀는 변화를 주도하는 행동하는 시민으로 성장했다.


또한, 연희는 그 당시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관객의 눈을 대신하기도 한다. 당대의 사건과 동떨어진 관객은 그녀를 통해, 시대와 사건에 이입하고, 부조리함을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연희를 따라 뛰고, 그녀가 바리케이드 위에서 광장을 바라볼 때 함께 광장을 바라본다. 이때 관객은 그녀와 함께 세상이 움직이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카메라(관객)가 바라보는 광장, 그것이 <1987>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이미지다.



광장을 복원한 영화

광장에 관한 기억

지금부터는 영화에서 조금 벗어나, <1987>이 보여준 광장에 관해 말해볼까 한다. 많은 시민이 광장을 가득 채운 장관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물결이 넘실대던 시청 앞 광장은 너무도 강렬하고 벅차오르던 이미지였다. 전국은 축구 대표팀의 경기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보다 ‘엄청난 수의 시민이 즐겁게 뭉칠 수 있는 대화합의 장’이 더 ‘신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시민의 숫자로 언론사와 시민 간에 집계가 다르지 않고, 다툼이 없던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시민들로 가득 찬 시청 광장에 직접 서 본 건 2008었다. 당시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국민의 불안감이 커졌고, 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그들과 함께 광장에 섰다.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 있던 게 처음이라 굉장히 신기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2002년 TV로 봤던 광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붉은 악마들이 있던 자리엔 버스가 바리게이드를 이루고 있었고, 수많은 경찰이 각을 잡고 서 있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겁을 먹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광장에 가본 건,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였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시기임에도 대통령의 탄핵을 바라던 국민들의 분노는 뜨겁게 끓어올랐다. 광장은 남녀노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시민으로 넘쳐났다. 개인적으로 봤던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이었고, 2002년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랐던 순간이기도 했다.


자주 광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그곳에 있을 때 느끼는 건 해방감이었다. 특히, 그 누구의 통제를 받지 않고서 차도 위를 걸을 때의 기분은 꽤 짜릿했다. 이 공간이 우리의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투표 외에도 국민이 직접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걸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해방과 자유, 그리고 뜨거움. <1987>은 이런 광장의 역사를 복원한 영화다.



장준환이 복원한 광장

2008년 광우병 집회 당시, 시청 광장에 있을 때였다. 한 명의 연예인이 옆을 지나갔었다. 배우 문소리였는데, 그 당시 장준환 감독과 같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디 기억에 오류가 없기를) 그는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있었을 정도로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감독이다. 추측이지만, 장준환은 집회에서 본 많은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아뒀을 것이다. 그 광장의 모습을 품어뒀을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이 광장을 스크린으로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때부터 그가 <1987>을 기획했을지 모르겠으나, 오래전부터 그는 이 광장의 역사와 의미에 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광장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컨테이너와 버스가 바리케이드를 이루고, 살수차가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등 억압과 충돌의 장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광장의 주인이 국민이 아닌, 권력자의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소통의 장이며,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광장의 역사를 안다면, 이런 모습은 비정상으로 보였을 다. 심지어 과거의 광장을 직접 목격했거나 그 순간에 있었다면, 울분을 토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장준환 감독은 그러지 않았을까.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역시나 추측이지만, 장준환 감독이 <1987>에서 가장 좋아했을 장면도 마지막 장면이었을 것이다. 연희가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을 바라보는 장면. 그는 이 장면을 통해 광장의 뜨거운 역사를 소환함으로써, 결국엔 그곳의 기능과 가치(해방과 자유 등)를 정상화하려 했다. 장준환 감독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젊음을 바치고, 1987년의 초상이 된 두 청년의 이름으로 광장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복원했다.



소환하기 힘든 그 시간의 무게

장준환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지금의 시민에게 그 광장을 돌려주고자 했다. 마지막 추측이지만, 그 정도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1987년을 소환하는 어려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 앞에서 장준환 감독이 가졌을 고민의 무게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두 청년의 죽음과 자유를 위해 사라져간 많은 이들 앞에서, 동시에 같은 시간을 통과한 적이 있는 인간으로서 장면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라는 부담감, 그리고 그보다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역사의 무거움을 견뎌냈다. 그리고 이토록 묵묵히 바라보고, 묵직한 연출을 보일 수 있던 동력은 ‘광장의 복원’이라는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텝이 그 어려운 시간을 그토록 오래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1987>에 무한한 감사와 찬사를 보내야 했다. <1987>은 2017, 2018년 최고의 한국 상업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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