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 볼까, 말까?
상상에서만 존재했던 AI가 현실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미 도달한 기술력이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 미래의 모습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에서 인간을 위협하던 존재들과 머지않아 대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먼저 느껴야 하는 건 상실감이다. 대체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하나씩 자리를 잃어가고, 긴 시간 열광해 왔던 것들 속에 있던 인간적인 요소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영화에서도 말이다.
촬영에 나타나지 않는 스타 '톰 라이더'(애런 존슨)와 그를 찾아 나선 액션 대역 '콜트 시버스'(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인 <스턴트맨>은 한땀한땀 액션씬을 만들어 왔던 이들의 현재를 조명한다. 특수한 옷을 입고 위험한 장면을 준비하는 방법과 촬영 시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소통하는 과정 등 관객은 알 수 없었던 현장의 모습을 생생히 담았다. 방화복과 와이어를 이용한 연기부터 자동차와 헬기 등 탈 것을 활용한 추격 장면까지 다양한 액션을 볼 수 있다. 롱테이크로 연출된 장면이 많은데, 덕분에 스턴트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긴장감을 생생히 담을 수 있었다.
<스턴트맨>은 콜트 시버스의 추락으로 문을 열고, 또 한번의 추락으로 끝난다. 첫 번째 추락이 주인공의 몰락과 함께 스턴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면, 두 번재 추락은 명예의 회복과 인생의 성취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두 번의 추락으로 영화는 '스턴트맨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더 리얼하고 완성도 높은 장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작품의 비상을 위해 기꺼이 추락할 수 있는 사람들. <스턴트맨>의 감독인 데이빗 레이치도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었고, 덕분에 영화 곳곳에 스턴트맨을 향한 애정이 묻어있다. 그래서 이들의 노고를 담은 촬영장 비하인드 씬이 유독 반짝거리는 듯했다.
재치 있는 대사와 다양한 액션으로 무장했음에도 <스턴트맨>은 아련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영화를 채워왔던 누군가의 열정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씁쓸한 진실 앞에서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영화 속엔 중요한 장면을 CG로 만들겠다는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현대 영화의 흐름이자 스턴트맨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스턴트뿐만이 아니다. 콜트 시버스의 얼굴을 스캔하고 이후 배우의 얼굴로 대체할 수 있는 CG 기술이 언급되는 장면에서는 배우의 역할과 가치에 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언젠가 AI와 CG로만 제작된 영상이 제작된다면, 우린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래서인지 데이빗 레이치가 이 영화를 통해 스턴트맨의 땀이 빛났던 순간을 붙잡고 박제해 두려는 것 같아 뭉클했다. 많은 요소가 1과 0이라는 숫자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변화의 시점에 그는 영화계를 지켜왔던 보이지 않는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데이빗 레이치의 '시네마 천국'이라고 해도 좋을 영화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해 두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기에, 오랜 시간 영화를 사랑했던 이들일수록 <스턴트맨>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