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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름 살기_6

올레 8코스

by 이성룡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 올레 8코스

오늘은 또 어디를 가볼까? 하면서 일기예보를 살펴보는데, 종일 흐리고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럼 오늘은 그냥 집에서 놀아 볼까?” 하니 이쁜각시가 “정원에서 선배부부와 함께 브런치를 즐기면 어떨까요?”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선배의 클래식 음악과 함께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 있는 아침을 즐기는데, 회색 구름사이를 뚫고 화사한 태양이 늦은 아침인사를 한다. 제주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무쌍한 것 같다. 흐리지만 산들바람 불고 가끔 태양이 눈인사하고 들어가는 이런 날씨에 집에 있는 것 보다는 경치 좋은 해안도로를 걷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집을 나섰다. 외돌개와 주상절리가 있는 올레 8코스를 걸어 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중문축구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색달 해변까지 왕복하면 5Km 내외로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충분하게 즐길 수 있는 여정이었다.


외돌개를 지나 중문축구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레 8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보니 주상절리다. 이곳을 걸어서 와보긴 처음이다. 입장료 받는 안쪽의 경관도 좋지만 걸어서 접근하는 주상절리 주변의 경관도 참 좋다. 적당하게 흐린 날씨에 시원한 바람 맞으며 걷는 해안도로는 언제나 상쾌하다.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어느덧 색달 해변 이정표가 보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색달 해변까지 가봐야겠다는 욕심이 살짝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제주 출장와서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에 여러 차례 숙박했었지만, 그땐 앞마당에 색달 해변이 있는지도 몰랐다. 남은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계속 걷는데, 아뿔싸 장애물이 나타났다. 앞에 조그만 강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급속하게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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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주 올레 8코스 중에서


주변을 살펴보니 강 하구 해변 쪽에 요트 선착장이 보이고, 요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한가롭게 드나든다. 아하! 이 요트 선착장 2층에 식당이 있다. 배고픈 눈으로 바라보니 더 아름다운 뷔페식당 “엘 마리노”. 정신 차리고 가격을 보니 웬만한 특급호텔급이다. 게다가 점심은 2시부터 음식이 떨어져도 보충되지 않고 식사도 3시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현재 시각 2시 조금 넘었는데, 이쁜각시를 보니 복잡한 표정이다. 본인의 취미인 색다른 음식을 접해보고, 맛도 보고 싶은 반면, 가격도 비싼데 조금 참고 이른 저녁 먹어도 되지 않나? 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가성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눌러앉았다. 맛있게 먹었다. 배가 차기 시작하면서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운치 있다. 이쁜각시도 다양한 음식을 분석(?)하며 좋아한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고, 평소 같았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점심이었는데 괜찮다. 기분 좋고, 행복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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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뷔페 식당 “엘 마리노”와 색달 해변


그리고 도착한 색달(중문)해변. 분위기가 참 좋다. 전망 좋은 정자에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셀카도 찍으며 한참을 즐겼다. 어라! 빗방울 같은 것이 한 번씩 나를 건드린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일기예보다. 오후부터 비 온다 했는데, 가끔씩 들랑거리며 인사하는 햇살 때문에 우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오면 어떻게 하지? 이 순간 이전과 이후의 마음상태가 달라져 버렸다.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비오면 맞지 뭐. 까짓것 날씨도 따듯한 봄인데 시원하고 좋지 뭐. 아무튼, 돌아오는 길은 롯데호텔을 지나서 가기로 하는 바람에 길을 잃어 조금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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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천제연 폭포 주변


그 덕분에, 원래 계획에 없었던 천제연 폭포, 광명사, 베릿네 오름 등을 섭렵할 수 있었고, 대신에 예정 보다 약 3~4Km를 더 걷는 영광(?)을 누렸다. 돌아오는 길에 논짓물에 들렀다. 수영장과 해수욕장이 같이 있는 아주 특이한 해변이다. 여름마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참 많이 즐기고 갔겠지? 아무도 없는 봄 바다, 그것도 바람 불어 파도치는 봄 바다도 참 좋다. 아주 이색적인 해변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주차장에 돌아오니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시간 되면 같이 저녁식사하자고 중문단지의 덕성원으로 초대해 주었다. 맛있는 굴 짬뽕을 사주시겠다고 한다. 점심을 워낙 잘 먹어 아직 배부른 상태이긴 하지만 고맙게 응했고, 선배의 인생사와 함께 덕성원 굴 짬뽕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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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논짓물


이것이 인생(?), 아님 여행의 재미 아닐까 싶다. 별 계획 없이 출발해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하고, 사실 치밀한 계획을 한다 해도 예정에 없는 변수와 실수로 인한 일 등이 겹쳐 전혀 예상 밖의 경험을 하는 의외성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것 같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면,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특히 여행에서는....



여행


여행, 생각만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설레임


계획, 호기심으로

일상에서 벗어난 파편들을

찾아 맞추는 퍼즐


여정, 꽉 찬 욕심으로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마주 구겨 처박는 자연


우연, 그저 걷다가

한여름 산들바람 같은

어쩌다 얻어걸리는 행운


여행은 멈출 수 없는 게임이다.

행복한 허상을 떠돌다가

혹여 심드렁한 결과가 나올지라도

언제든 지우고 다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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