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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2. 2024

먼 데서 빛나는 별

"애들은?"

"언니네!"

"왜? 같이 안 오고?"

"수영이랑 해원이 애들하고 노느라고... 내일 올 거야."


그게 다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큰 평수를 전세 주고, 작은 평수에 짐을 다 구겨 넣다시피 하고 떠난 아내였다. 


"그래도 혼자 지내긴 좁지 않을 거야."


 내가 침실로 쓰고 있는 작은 방 하나, 부엌이 달린 거실 겸 큰 방, 그 방들을 끼고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베란다가 하나, 그게 전부였다. 분양할 때,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립식으로 지었다고 자랑했던 아파트였다. 층간 소음 같은 건 없냐는 질문에, 조립식은 양생이 될수록 더 튼튼해지는 성질이 있어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어 두라는 핀잔까지 듣기도 했다.


 "야, 거긴 층간보다 측간이 심해.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옆집강아지 하품하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두리번 댄다니까, 우리 집에 강아지 들어왔나 싶어서 말이야."


 한동네 사는 성회가 총각 시절 살아봤다던 이 아파트 9동의 칸칸에 대한 후기를 직설적으로 읊었다. 시도 때도 없이 끙끙대던 옆집 부부가 내는 소리는 늘 이야기를 피크까지 끌어올렸다. ‘그럼 난 어떡하란 말야?’라며 흐느끼며 소리치던 그 집 여자가 신혼살림 6개월 차에 살림을 깨고 나갔다는 얘기로 열띤 목소리와 함께 들떴던 성회였다.

 아무튼 나는 별일 없이 7년을 잘 지내오고 있던 집이었다. 입주 후 성회의 말에 일말의 은근한 기대감으로 침대 끝에 누워 벽을 향해 귀 끝을 세워보곤 했으나, 갑자기 소환된 적막감이 나를 더 고독한 존재로 만들기에 충분히 빤하고 부족한 공간이었다.

 벽과 벽 사이, 공간이 있었고, 공간과 공간사이엔 적막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으니, 그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살고 있는 나는 어떠한 성스런 소리도 용납하지 않는 단단하고 빈틈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채 지난 7년간을 잘도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집을 둘러보지도 않았고, 내가 차리고 있던 식탁에 와서 앉지도 않았다. 장롱 위로 각종 궤짝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고,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안방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이미 창고가 되어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많은 짐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찾아야 했으니까. 그 창고방 한가운데 아내는 퍼질러 앉았다.

 나는 김치찌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밥을 그릇에 퍼담고 냉장고에서 나머지 반찬을 꺼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드라마에 몇 번 출연한 여배우가, 소속사 대표의 권유와 회유로 원치 않는 성접대에 동원되었고, 그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한 사건이 연일 포털을 채웠다. 정계 언론계의 거물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문건이 나왔고, 매니저가 유서를 가짜로 작성했다느니, 유족의 고발이 이어진다느니 하는, 단순한 하나의 사실을 두고 알 수 없는 복마전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어쩌면 아무도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더더욱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일이었다. 양심을 버린다면, 끝까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놀랍게도 그걸 사람들은 믿을 것이고, 심지어 자신도 자기가 한 말을 믿게 될 것이다. 완벽한 속임수란 이런 것들이었다.


 루틴, 저녁을 먹으며 늘 꺼내 놓던 소주병을 깜박 잊었던 나는 냉장고를 열고 소주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찬장을 열어 소주잔으로 쓰는 작은 찻잔을 꺼냈다. 파란색의 작은 꽃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는 청화백자 종류의 일본 도자기였다.


 "여전하네."


 어느새 아내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대꾸 없이 잔을 들이켰다. 다시 밥을 먹고, 찌개 국물을 떠먹고, 두부를 젓가락질로 두 동강을 내서 씹었다. 다시 한잔을 따라서 마시고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대통령 후보의 불법 사금융 기업이 주가 조작 등의 방법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그 금융기업의 실질적인 소유주가대통령 후보라는 증언 앞에서도 재판부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유일한 사실 하나밖에 없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거짓말을 입증하려면 대단한 노력과 철저한 조사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더구나 앞뒤로 포진한 결정권자들이 협잡을 해서 모의한다면 판결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것을 정치라고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면 진실과는 멀어지며, 언제든 합리화의 교합으로 증거를 호도하고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모여 있는 그들을 작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주모자가 있게 마련인데, 놀랍게도 당사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데 묘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래서 그 당사자는 항상 떳떳하고 당당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담당한 직원들로 사안을 분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의 공간에 둘이 숨을 쉰다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했다. 적어도 아내는 그렇게 보였다. 왜 그런지 아직도 내 눈을 한 번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식탁 맞은편 자리에 조용히 숨 쉬고 살아있는 인형처럼 눈만 깜박거리며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일이 금요일이네."


  나는 습관처럼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날짜와 요일을 읽었다. 지난 7년간 홀로 있는 시간의 틈을 메꾸려는지 나도 모르게 뭐든 소리내어 읽는 버릇이 들어버린 듯했다. 혼자 거리를 걸으며 중얼거리는 것운 이제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내일이 금요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심심하고 하릴없는 주말이 또 시작되는구나, 누굴 만나서 술 한잔 해야 하나, 집으로 올라오는 먹자거리에 있는 건물 지하의 바가 떠올랐고, 후문 쪽에 있는 마담 혼자 운영하는 간이주점이 떠올랐다.


 "그래도 집이라고,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 마음이 놓이고 좋네."


 내가 할 수 있는 심정 그대로의 말이었다. 자연스럽고 편한 말투가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일 점심에 여기 중학교 알지? 민영이 다녔던... 거기에 정희가 발령을 받았대나 봐. 만나서 점심 먹기로 했거든. 시간 괜찮으면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희라면, 아내의 사회친구였다. 용케 늦은 나이에 임용에 붙어 교사가 된 사람이었다. 지금 벌써 오 년 차 정도는 되어 가고 있을 터였다. 중국집에서 우연히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방과 후에 남학생 몇을 데리고 나와 짜장면을 먹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빛을 교환하고 다가가 아는 채 할까 하다가, 직원들과 나가면서 그녀의 테이블까지 같이 계산하고 나갔던 기억, 내가 그들의 식사자리에 끼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나, 이유 없이 그 자리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음을 알 게 되었다.

 기억이라는 건 참 묘한 데가 있었다. 깜깜한 밤길에 손에 든 성냥불을 하나 켜면, 그제서야. 발밑이 보이기 시작하고, 손을 높이 쳐들면 주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한번 갈피가 잡힌 기억은 계속 실뿌리를 잡은 듯 점점 굵은 뿌리를 향해 나갈 수 있으니, 한번 잡은 잔뿌리들은 기억의 본뿌리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문들이었다.

  먹은 찬들을 치우고, 남은 찌개는 유리 찬합에 넣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식으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내일 다시 재료를 좀 더 넣고 우려먹어야 했다. 침대로 가서 티브이를 켜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침대 헤드 뒤편으로 난 창문을 열고 창턱에 다리를 올리고 상반신을 베란다 밖으로 빼냈다. 베란다 창은 24시간 열어두었다. 한겨울에도 그렇게 했다.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집은 난방이 고장 났나 봐요? 난방비가 하나도 안 나와서요, 점검 좀 해야겠습니다."


 싱크대 밑에 있는 지역난방 밸브를 잠가놓고 산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난방비가 안 나올 수밖에. 거기다 한겨울에 베란다 창문까지 활짝 열어두다니,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는 것으로 그 바람과 추위를 즐겼다. 혼자 산다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선택은 나의 자유였고, 이러한 행위는 누군가와 함께 생활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위에 속했다.

 아내가 돌아왔고, 다음날 저녁에는 아이들도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불금이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식사를 했고, 나는 웃을 수 있었고, 떠들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웃었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예전처럼 마트에 가서 장도 보았고, 늦은 저녁, 집 앞 회꼬시 집에 가서 마음 놓고 술도 한잔 했다.


 "아빠, 오늘 우리 수원 가서 놀아도 돼? 해원언니가 또 오래."  


큰 애가 작은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응, 아빠. 우리가 있으니까 집도 좁고 덥고... 잠자리도 불편할 거고..."


아이들이 자기들로 인해 부모인 우리가 불편할 거라는 배려가 깔린 듯했다.  


 "그리고, 우리 와서 아빠가 엄마 안아주는 거 한 번도 못 봤잖아... 그렇기도 하고..."   


 나는 술이 오르는 취기 때문인지 얼굴에 열이 피어오르며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슬쩍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회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내내 무신경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듯했다. 집에 온 이후 제대로 마음 놓고 웃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원래 잘 웃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굳어 있는 표정을 유지한 적은 없었던 부드럽고 서글 서글한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표정의 아내였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이 수원으로 가겠다고 했고, 둘 사이는 여전히 서먹한 기운이 돌았다. 아내가 좀처럼 말을 하지 않고 있는, 말을 의식적으로 아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 호응하듯 말수가 줄었고, 급기야 나는 내 침대에, 아내는 창고로 쓰는 큰방에 자리를 깔고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고 누웠다. 아이들은 여기 동네 친구들을 만난다며 세꼬시집에서부터 헤어져 각자의 갈길로 나가고 없었다. 

 아무리 거리가 가까워도 공간이 분리된다면야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13시간을 비행기로 날아가야 얼굴을 볼 수 있는 미국만큼이나 먼 이쪽과 저쪽의 벽으로 막힌 방과 또 다른 방의 거리였다. 정적 속에서 티브이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이쪽과 저쪽의 공간을 무형화시키면서 우리 둘은 어떤 휘어 늘어진 공간 속에서 각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물질들인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렇게 정신을 까마득히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땐, 티브이도 꺼졌고 사방이 어둠에 잠겨 암실과도 같은 백색소음이 귀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어둠속을 꿰뚫듯 손을 뻗어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그 순간 바다 한가운데 좌초해 떠돌던 마스트가 발견한 불 하나가 먼바다 끝 어디선가 깜박대듯, 또렷한 말소리가 귀 속에 틀어 박혔다.


 "내일 모레... 글피, 그래 나도... 아... 진짜야... 할 수만 있으면, 아...  나도 그러고 싶다고... 아직 말 안했어. 나도 당신만큼이나 간절해… 당신 목소리... 아... 전부 느껴진다, 당신 품에 안기고 싶어, 이 느낌, 하... 그대로...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 사랑해."


 띄엄띄엄, 핸드폰 저쪽의 말에 화답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흔들리며, 깜박대는, 하얀 부표처럼 나를 꼼짝 못 하게 붙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 방은 시간이 흐르기나 할까,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흐릿했던 머릿속에 전등이 하나 켜지는 것 같았다. 느린 만큼, 또렷하고 생생한 목소리였다. '당신... 당신... 내 영혼...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 무엇보다 그말들의 사이사이로 배음처럼 일관되게 깔렸던 낮은 톤의 '아...' 소리는 살면서 아내로 부터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낮은 음들이었다. 침대를 둘러싼 방안의 물건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에 물었던 담배 위로 손이 올라간 채, 나는 꽤 긴 시간을 그렇게 자리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베란다 바깥 먼 데 어딘가에서부터 맞은 편 벽면으로 희부연 빛이 비쳐왔다. 옆방은 고요했고, 나는 몸에서 혼이 빠져나오듯 유령이 되어 일어섰다. 몸은 허느적거렸고, 숨도 쉬지 않았고, 여기서 저기로 흔적없이 이동 가능한 상태가 된 듯했다. 

  아내가 있는 옆방으로 건너왔을 땐, 여전히 세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옛날부터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사방이 책장들로 둘러 싸여 가만히 놓여 있던 그 가운데에, 아내는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로 눈을 감고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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