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
개봉일: 1954년 6월 24일 (미국)
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
상영 시간: 2시간 5분
음악: 맥스 스테이너
촬영: 프란츠 플래너
젊고 총명한 윌리스 키스는 제2차 세계대전 미국 해군함, 케인호에 배정을 받고 입대한다. 케인호에는 새로운 선장으로 필립 프란시스 퀵 선장이 임명되고 케인호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항한다. 퀵선장은 예전의 선장과는 달리 케인호의 질서와 명령 체계를 새로 잡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강력한 통솔력으로 부대를 지휘한다. 그러나 퀵 선장은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 심한 정신 불안 증세를 보이고 심지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들추어 부하들을 추궁하는 등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부하들은 지휘권 문제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케인호를 지휘하던 퀵 선장은 심한 스트레스 증세와 함께 통솔력을 잃고 만다. 이를 보고 있던 스티브 매릭 중위는 퀵 선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자신이 케인호를 지휘한다. 그리고, 이날 밤의 사건을 계기로 '반란' 여부를 둘러싼 재판이 벌어지는데...
영화가 던져주는 문제는 이렇다. 조직(사회), 법, 정의. 진정한 애국심의 출처...... 원칙을 고수하는 지도자(지휘관, 상사)와 그 부하들 간의 갈등이 극단적 결정과 판단으로 반역자가 되는가 영웅이 되는가 하는 문제. 현실적으로 처리하기에 매우 곤란한 문제이다. 인격과 명예, 조직의 존립을 판가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간단히 말하면, 진정으로 비겁한 인간유형은 생각이 많은 인간 -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흔드는 인간, 극 중 작가로 나오는 중위 , 키퍼 -이라는 것이다. 소위 지식인 회색분자가 결정적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이다.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 회의하며 숨어버리는 인간유형들이다.
그러나 키스 소위와 부함장 메릭중위는 자신들의 배의 안전을 위해 함장을 해임한다. 행동하는 인간유형이다. 이들이 반역죄로 법정에 서는 것이다. 선상 반역은 실제로 사형에 처해질 만큼 엄중하다.
모든 사건이 이들 젊은 장교들의 승리로 끝나고 자축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이들을 변호했던 법무관이 술 취한 모습으로 파티장에 들어온다. '너희들이 잊고 있고, 법정에서 내가 말하지 않은 것, 그것을 말하기 위해 내가 여기 왔다. 너희들이 대학을 다니고 편안히 살고 있을 때 퀵함장과 같은 사람이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기심과 개인적 불만으로 함장을 해임하고자 한 사람은 여기 남고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나와라.'
법무관은 키퍼의 얼굴에 술을 끼얹고 자리를 뜬다. 모두 그를 따라 나간다. 키퍼만이 유일하게 파티장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는다.
법이 곧 정의는 아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근거를 법이 제공할 뿐이다.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명예와 존엄이며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 이 시간에서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보수의 가치와 정의를 실천하는 영화다. 소위 애국적 면모를 숭상하며 잊었던 영웅을 기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단, 그 보수라는 것이 보수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을 때만이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1954년의 시점이다.
이제 지금 2025년의 시점에서, 한국에 보수가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켜야할 보수가 있는지, 존중하고 계승해야 할 숭고한 그들의 가치가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에 나가 전사한 많은 전몰 세대가 있었다. 그들이 사라진 지금, 고작 이런 허무맹랑한 권력과 신디케이트적 카르텔에 헌신하고자 그들이 역사에 몸을 던져 산화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