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투게더

by 별사탕
밀리와 팀, 이 둘은 실제 부부다.

장르 바디 호러, 공포, 블랙 코미디, 로맨스

감독 마이클 생크스

주연 데이브 프랭코(팀 역) 앨리슨 브리(밀리 역)

촬영 저먼 맥미킹

편집 션 라히프

개봉일 미국: 2025년 7월 26일(선댄스프리미어) 한국: 2025년 9월 3일

상영 시간 102분 (1시간 42분 0초)

대한민국 총 관객 수 30,766명

상영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연인이 주인공으로 메인 캐릭터이고, 사이비 종교단체가 배후로 설정되어 있다. 이건 공포영화의 반복되는 규칙이다. 그런데 공포의 대상이 오컬트적인 사이비 종교의 마법력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의 상호관계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정리해 보자. 이쪽에는 현실의 세상이 있다. 저쪽에는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신비의 세계가 있다. 세상과 세계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두 영역이 작동하는 방식은 욕망이다. 두 개의 욕망이 충돌한다. 한쪽은 구속하려고 하고 한쪽은 벗어나려고 한다. 이쪽에 속한 우린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투게더는 인간 최고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는 사랑의 구속과 해방을 다룬다. 모든 남녀가 살아가며 죽을 때까지 그것을 찾아 헤매지만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으며, 평생을 의심해야 하는 관계의 불편함을 우린 '사랑'이라고 부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부하게 이런 스토리를 다시 되새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랑이란 늘 그런 것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의심한다.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하려는 시점에 팀과 밀리는 사랑의 시험에 든다. 결혼으로 온전히 생활의 안정을 누리려는 밀리와 아직 자신의 일을 더 하고 싶은 팀의 시골 동거가 시작된다. 이 새로운 동거는 둘의 관계가 끝날 것을 예고하는 설정이다. 프러포즈에 실패한 밀리, 여전히 도시로 나가서 밴드일을 해야 하는 팀이 보여주는 성격적 결함은 강제적 결합을 요구하는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힘에 노출되면서 몸이 붙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이런 강제적인 몸의 병합으로 팀은 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공포(신체적 병합이 가져오는 정신적 공황)는 두 가지로 발산된다. 한쪽은 캐릭터 팀의 내면에 생긴 변화-이것은 강제하는 사랑에 대한 맹목적 수긍-이고, 다른 한쪽은 관객의 내면에 생기는 사랑의 강제성에 대한 저항감이다.

보통 우리가 사랑을 수용하는 방식은 하나 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는 방식과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는데, 영화는 하나 되는 쪽을 선택했고 그것이 보여주는 결말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신인류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자식도 아닌 새로운 인간 유형이 탄생하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결합을 통해 정신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족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태어난 종족은 더 이상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게 된다.

남은 하나, 관객의 선택을 보자. 서로의 사랑이 이질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은 그 자체의 상태에서 멈춘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 평화가 온다. 모든 사랑의 정점은 평화가 아니던가. 하지만 여기도 갈증은 있다. 극중 내내 팀이 목말라하던 바로 그 갈증이다. 알지 못하는 몸속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증, 그것은 하나가 되라는 강박과도 같은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이 강제될 때 보통의 인간은 그것을 공포라고 부른다. 몸이 하나 되는 비주얼이 공포가 아니라, 정신이 강요받고 있는 하나 되라는 종교적 제의와도 같은 명령, 그것을 인간은 견딜 수 없으며, 그것이 현실화되는 모습 자체가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 보여주고 싶은 것,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현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한 장면이다. 공포영화장르가 가야 할 곳을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공포는 이제 비주얼과 사운드로 그걸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다. 우린 이미 상황 자체가 공포인 현실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keyword
토, 일 연재
이전 17화땅에 쓰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