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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05. 2024

수유천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감독 각본 제작 촬영 편집 음악 음향 홍상수

제작실장 김민희

주연 김민희,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동시녹음서지훈

제작사 영화제작전원사

배급사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개봉일 2024년 8월 16일(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

2024년 9월 18일

상영 시간 111분 (1시간 51분 28초)

홍상수 감독의 32번째 장편이자 2024년작 한국 영화.

수상 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 국제 경쟁부문 초청작, 최우수연기상 수상작


  홍상수의 일련의 영화가 무의미한 스토리의 나열로 점철된 것은, 김춘수가 추구했던 무의미시와 유사하다. 관념 이전의 언어,  언어 이전의 언어를 보여주면서 세계를 해체했던 김춘추, 그의 길을 홍상수가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데자뷔를 느낀다.

  스토리가 되기 전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일반화된 그의 연출법이고, 의미망으로 엮어 낼 수 없는 의미들은 기호화되지도 못할 정도로 파편화되었거나, 그래서 사건들과 대사들은 네트워킹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우리들의 실재 모습이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리얼리즘적 연출에 충실하다고 혹자는 말한다.

  홍상수가 엮어 내는 장면들은, 마치 우리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이 영화가 될 수 없는 이치를 알게 해 준다. 극화된다는 것은 압축, 극대화되어 소위 드라마틱한 장면들로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들은 재미없고 지루하면서, 인내심 강한 관객에게조차 허무감을 안겨 준다.


  여기선 가능한 것이, 저기선 불가능하다는 시공간의 문제는 홍상수의 일관된 주제의식 중 하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같은 연극연출가인데, 소속 학생 세 명과 사귀면 사회도덕관념에서 위배되어 지탄을 받아야 하고, 학과 교수와 사귀면 문제 될 것이 없는 사례. 둘 다 음주상태임에도, 나는 운전불가이지만 너는 운전해도 된다는 이중잣대, 자신을 비난한 누나의 딸을 만나면서 그 딸 앞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례, 한강의 지류를 베틀로 직조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전임의 작업, 이 모든 행위와 말들은 인간이 갈구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뜻과는 너무나 다르게 ‘아무 것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판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관념도, 의미도, 그에 따른 언어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무' 위에 서 있는 것들이라면, 한강과 수유천, 본류와 지류, 발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임의 작업은 애초부터 무의미 위에 놓인 작업이었다. 신령한 종교적 체험을 한 전임의 눈으로 본, 세상의 그것들이 무엇이 되었든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이 세상에서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부질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홍상수의 마지막 독백은, 불가의 근원 화두 ‘이 뭐꼬?’에 대한 화답이다. 사물의 현상이 만들어내는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 과정이 의미의 해체고 홍상수는 그 길을 따라 수유천이라는 의미에 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제 그의 여정이 끝났다. 홍상수 상업영화시대(딱히 그런 시대가 있었는지 의문스럽지만,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본)를 1막으로 본다면, 이제 2막이 내려갔다. 다음 막이 오르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를 목격하기 위해, 한번 날면 날개 하나로 세상을 덮어버린다는 붕새의 비상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오늘도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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