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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균형을 위해 몸을 움직여라

영국 정원에서 내가 만든 화덕으로 고소한 빵을 굽는 꿈

by 세반하별

“끌어당김은 음양의 조화인데, 만약 세로토닌이 느껴져 글의 깊이가 들어간다면 반대로 도파민이 필요합니다. 음양의 조화가 불균형될 수 있기에 더욱 건강한 삶을 위해 이 음양의 조화를 잃으면 안 돼요. 나가서 뛰고 오세요! “


요즘 글 쓰다가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떤 글귀에 멍해지기도 하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 유명하다던 한의원에서도 나에게 뛰기를 추천하셨지만 귓등으로 듣고 말던 나였다. 그런데 갱년기 전조 증상이 아니냐는 농담 말씀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아, 뛰라는 언니님의 말씀에 그냥 나가 뛰었다. 매일 걷던 공원인데 오늘따라 날씨도 적당히 따뜻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뛰기 안성맞춤이다. 사실 뛴다기보다는 조금 빠른 걸음의 속도로 30분 동안 공원 두 바퀴를 돈다. 평소에는 귀에 뭔가를 꽂고 들으면서 걸었었는데, 오늘은 올곧이 뛰는 데에만 집중한다. 오래간만에 뛰니 숨이 차지만 촉촉하니 땀도 베이고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이래저래 도파민 생성을 활성화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지난달부터 DIY 집 고치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벽돌 쌓기.

원래 퍼즐 맞추기 좋아하는 나는 성향상 이런 작업이 잘 맞지 않을까 상상만 해봤지, 삽을 직접 들어 벽돌을 쌓아보기는 난생처음이다. 2인 1조로 팀을 짜는데, 내 짝꿍 로버트는 팀 빌딩이 아니라 혼자 하고 싶단다. 슬쩍 내가 못할까 낮추어보나 했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인 분이었다. 나도 흔쾌히 혼자 해보겠다고 나섰다. 미안했는지 물어보면 아는 선에서 열심히 설명해 주는 리처드를 나의 서브 선생님으로 삼고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실습이다 보니 시멘트가 아닌 찰흙을 곱게 개어서 몰드 작업을 한다. 물먹은 모래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삽으로 이리저리 물과 배합하는데 제법 힘이 많이 든다. 물어보니 힘들더라도 이런 뒤적임 작업은 반죽 안에 공기를 빼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큰 삽으로 뒤섞고 작은 삽으로 왕만두 만한 사이즈로 흙을 잘 조형해서 벽돌 사이를 매운다.


그러고는 벽돌 사이사이를 줄 맞추어 쌓아 가는데, 벽돌 간의 평형이 맞는지, 줄 간격 10mm가 맞는지, 모서리 각도가 맞는지 고려할 것들이 참 많다. 십여 명의 급우들과 함께하는데 처음에는 여기저기 수다가 많더니 마지막 한 시간은 적막.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하니 땀이 송송, 허리는 뻐근하다. 나랑 한 조였던 로버트의 호흡 소리가 불안정하고 호흡이 가팔라진다. 괜찮으냐 물으니 원래 당뇨가 있다고 한다. 얼른 물 마시고 사탕 하나 섭취하는 휴식 시간을 갖도록 도와줬다.


쉬는 시간에 옆에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다들 자기 집을 스스로 고쳐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작게는 집 마당에 피자 화덕을 만드는 것부터, 욕실 타일 바꾸기, 벽 페인트칠하기. 수리 의뢰하면 너무 비싸다는 장탄식과 함께 자기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 만드는 손맛이 그리워서 온 사람들이었다.


올해 내가 사는 동네에 집을 하나 마련하려는 계획이 있다. “싸고 좋은 집을 사고 싶다.” 생각의 시작부터 논리적 모순점이 있다. 싼 집은 집 상태가 좋지 않아서일 테고, 좋은 집이란 좋은 위치에 잘 관리된 물건일 텐데 그럼 싼 가격일 리가 만무하다. 모든 재화의 가치는 시장의 원리를 반영한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잃은 어린양 같은 내 물건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부동산 시장을 돌아본다. 결론은 좋은 자리에 있는 후진 집을 사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수리다. 이 영국 땅에서 사람 손이 닿는 서비스는 무엇이든 비용이 무척 비싸다. 그 비용을 감당한다고 해도 한국에서처럼 사람을 바로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공사가 들어가도 공사 기한에 맞춰 수리를 끝맺는 집을 본 적이 없다. 내 긴 장고의 끝은 내가 고치자였다.


우리 반 튜터는 수업 중간중간 자기 작업 공간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큰 그림 안에서 하고 있는 작업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는 작업에 집중하느라 가는 길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였는데, 비단 벽돌 쌓기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도 일상 속에 파묻혀 살다 보면 정작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큰 그림을 잃을 수 있다. 가끔은 내 인생에서도 거리를 두고 관찰자의 시선을 갖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작업들도 둘러보고 배우고 느껴보라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허리도 좀 펴야 할 것 아니냐 하시는데, 다들 공감하는 의미의 웃음소리가 난다.


수업 말미에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쌓은 벽돌 벽과 사진을 남기라 하신다. 이유는 4시간 작업한 벽을 다 부수고 정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쌓아 올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니 무너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것도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건축 보수 작업에 도움이 될만한 핸드북도 소개해주신다. 뒤적여보니 우리나라 빨간 벽돌집 스타일이 영국식 벽돌 쌓기 스타일이었다. 이 밖에도 네덜란드식, 프랑스식 등 벽돌 쌓는 방법이 다양했고, 스타일에 따라 기자재, 소재 등이 무궁무진했다.


처음 시작은 좋은 곳에 싼 집을 사서 수리를 스스로 해보자는 거창한 꿈이었다면, 오늘은 집 마당에 내가 만든 화덕에서 갓 구운 따끈한 피자와 빵을 구우면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만 해도 행복한 작은 꿈을 꾼다.


지금껏 공부하고 앉아서 하는 일만 해 본 나는, 음양 기운의 축이 한쪽으로 기울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예전보다 그 불균형의 여파가 제법 오래간다. 몸을 움직이고 몸의 기운을 돋우는 운동도 활동도 기쁜 마음으로 해 나가야겠구나,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뻐근한 어깨 주무르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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